보성전문의 개교기 1907년에는 <법정학계>가 나와 서구적 신학문 수용의 채널이 됐다. 보전학생회의 회지 <침목>은 학술적 토론의 심포지엄과 동시에 근대국가의 민족혼을 일깨웠다.8·15 해방 후 대학으로 승격된 고려대학교는 한국대학신문의 선구자로서 <고대신문>을 탄생시켰다.

1947년 11월 3일 창간된 <고대신문>은 고대를 혼탁한 정치운동의 소용돌이에서 구해내는 구교(救敎)운동이었고 학문탐구의 대학정신을 정초시키는 석탑의 초석이 됐다. 해방공간의 정치적 외풍인 좌우익대립, 이념갈등, 교조적 맹신, 편가르기에서 고대공동체 내부에 대학의 학풍을 일으키고 학문연구와 인격형성의 교육적 풍토를 다져 모든 고대가족을 협동·화합케하는 큰 그릇이 됐다.

‘여우회(麗友會)’의 애교심이 밑거름이 되고 학문연구와 교육에서 이념갈등, 사제지간의 관계, 학교당국과 학생회의 관계를 ‘다양성의 통일’로 엮어내는 유니버시티 정신의 맹아가 된 것이 <고대신문>이었다. 6·25 피난기에도 <고대신문>은 고난을 극복하며 대학을 재건하는 고대의 화합된 개척의 힘을 만들었다. 1950년대 우리 대학생들이 ‘정신적 실향민’이 돼 방황할 때에도 <고대신문>은 자유, 정의, 진리의 고대정신을 선양해 독립·자강의 대한민국 건설에 희망찬 비전을 가지도록 고대가족의 지남침이 돼주었다. 고대가 수난을 당할 때 <고대신문>은 그 아픔을 같이 울어 주고 고난극복의 의지를 두었고 고대가 경사를 맞이할 때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해 <고대신문>은 고대인의 마음의 거울이 되기도 했다.

휴교령을 당하거나 위기를 맞이했을 때마다 <고대신문>은 모든 고대가족이 일심단합해 구교, 고대수호에 나서게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센 바람이 불어도 우리 고대의 대학은 문을 닫을 수 없고 강의실에서는 강의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대학공동체 정신의 ‘호민관(護民官)’적인 대한언론의 사명을 관철해 왔다.<고대신문>은 한때 외풍의 영향으로 정치화되면 독자에게 외면당하고 자유언론의 패기를 잃으면 나약하다는 꾸중도 듣는 가운데서 대학언론으로 성숙됐다. 그동안에 <고대신문>은 그 신문의 기본 성격이 대학과 학문, 교육의 발전에서 그 중심을 견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고대신문>을 읽으면 대학을 느끼고 학문에 눈뜨고 고려대학교가 드러나야 한다는 고대신문의 대학신문으로서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교육 중에서도 인성교육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인격교육은 대학에 도덕적 분위기가 꽉 차게 하고 각양각색의 학생들이 그리고 학과와 전공이 다른 학생들이 고대의 공통적 규범이 무엇이며 고대인의 돋보이는 교풍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터득케 하는 대학공동체 윤리 교육의 몫도 <고대신문>이 해온 것이다.

<고대신문>은 모든 고대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왔다. 그러나 이 대학신문이 우리대학 공동체의 분열과 편가르기를 조장해왔다면 고대인들의 ‘우리의 신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학생 편집국장일 때 특히 대학신문의 마음가짐은 우리가 너무 앞장서서 대중을 선동한다는 교만을 자제하고 독자의 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독자보다 뒤져가서도 안된다. 신문이 살려면 독자를 잃지 않으려면 고대가족 속에서 그 독자와 같이 가야 한다는 편집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근대시민사회 이전의 전통사회, 왕조시대에는 신문이 없었다. 경국제세의 국사에 대한 정보, 지식은 통치층에 독점되어 있었다. 하버마스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그것을 비판적으로 극복한 대표작 <공공권의 구조전환>(1982)을 내놓고 근대사회의 부르주아 신흥계급이 내놓은 위대한 유산은 ‘공공적 공간’, ‘공공권’이라 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는 도구적 행위가 있지만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했다. 근대 시민사회가 공전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 바로 이 자유시민들이 개척한 ‘공공권’이라 했다. ‘공공권’은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강제없는 합의’를 해내는 해석학적 차원이다.

구소련이 실패한 것은 당기관지 <쁘라우라>와 정부기관지 <이스베스치아> 밖에 시민들의 자유로운 독립언론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사회주의는 식량배급제만이 아니라 시사뉴스도 당이 배급하고 사상도 배급하고 자유민권의 공공권을 말살했다. 마침내 중앙권력의 지령, 지시만 있었다. 그래서 구소련인민들은 이 나라에는 ‘진리(쁘라우라)’는 없고 명령하달의 ‘고지(告知)(이스베스치아)’만 있다고 야유했다.우리 고대신문의 전통은 제도적으로 대학총장이 사장이면서 학생에 의해 편집되는 자유언론의 길을 걸어왔고 때로는 대학본부의 학사정보의 ‘고지’가 거의 무시되던 때도 있었으나 대학당국과 학생의 열려진 ‘공공권’의 몫을 잘 조절해왔다.

우리 대학의 학사행정, 학생활동, 대학복지분야에 대해 고대신문은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있게 반영하고 분열과 대립을 지향하여 건설적 합의를 유도하는 대한언론의 공기(公器)’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했다.근래에 와서 대학기능이 확장되고 글로벌 대학의 국제교류가 증대되면서 대학·전공간의 간격도 생기고 ‘다중심대학’의 멀티버시티 경향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양의 통합자’인 <고대신문>이 있어 21세기 글로벌 고대의 약진에서도 고대가족의 화목과 협동, 고대의 정체성의 유지에서 막중한 역할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고대는 어느덧 유니버시티 타운이 되고 캠퍼스, 교수진, 학생간에도 연대성이 약화될 수 있고, 고대안에 갖가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기주의가 서로 인사한번 한 적 없는 다세대주택같이 될 수도 있다. 독일대학 등의 과복지의 유럽형대학의 쇠퇴를 보면서 우리대학도 성장과 복지의 슬기로운 조화에 힘쓰는데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대학공동체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의 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신세기의 고대신문은 다양성을 용인하는 관용과 연대의 공동체의식을 북돋아주는 고대 ‘유니버시티’ 공동체 강화의 통합언론, 화합언론, 애교언론의 정도를 힘차게 개척해 다시 한국대학 언론의 새 범형이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본교 개교 1백주년 기념의 높은 영마루에서 <고대신문>은 단합된 양진고대의 기수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신세기에도 고대신문은 정치운동의 신병훈련소가 되거나 이념갈등으로 홍역을 겪는 대학혼돈의 위기를 가져오는 외풍을 막는 대학자치의 방벽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대학은 과학·기술·기초학문·교육혁신의 가열한 경쟁에서 ‘창조적 파괴’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학문연구, 교육기능, 사회봉사와 특히 사회유지로부터의 재정지원에서 외면당하면 쇠퇴는 불가피하다. 고대신문은 널리 사회독지가의 재정지원을 동원할 수 있는 토대인 고대의 신뢰성 홍보에도 앞장서주어야 할 것이다. 고대를 키운다는 것이 바로 신한국의 민족부흥의 길임을 널리 신뢰할 수 있게 힘쓰는데서 대학재정 확충의 선도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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