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입사해 6년반이라는 최장기간 사건기자, 일본특파원을 거쳐 수석 논설위원까지. 한국일보 칼럼 <지평선>에 글을 기고하는 동안 그의 글을 스크랩하는 매니아 독자층이 생기기도 했고, 동료 논설위원은 <지평선>에 그를 소재로 한 글을 써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32년 1개월간의 기자생활을 마감하는 문창재(국어문학과 64학번)씨를 만나보았다.

△ 논설위원은 신문사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로 책임감이 막중할텐데 어떤가.
- 논설위원이 쓰는 코너는 사설과 칼럼이 있다. 칼럼은 필자가 주제를 정하지만 사설은 토의를 통해 주제를 정한다. 한국일보의 칼럼은 <지평선>이다. 나는 이 코너에 7년간 글을 썼다. 그리고 사설은 신문사의 생각을 대변하는 난이므로 독자들의 반응이 민감하다.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하고 어떤 독자는 신문사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사건기자와 달리 논설위원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   

△ 일본특파원도 지냈는데 어떻게 하게 됐나.
- 각 언론사마다 일본의 언론사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일보는 요미우리 신문사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 특파원을 파견할 때 자연히 어학에 능통한 사람을 찾게 되는데 나는 일본 게이오대 신문학연구소에서 수료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어에 능통한 내가 자연스럽게 특파원으로 선정된 것이다. 90년부터 93년까지 일본 특파원으로 일했다.

△ 특파원은 어떤 일을 하게 되나.
- 일반 기자의 일과 동시에 비공식적인 민간외교활동도 동시에 하게 된다. 제휴언론사와 기사를 교환하고 취재요청을 하거나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는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일본에 한국붐이 일때였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일본인납치 사건 등으로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일본에 ‘염한증’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 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회의감과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 처음 언론사에 들어왔을때가 유신독재가 행해지던 때여서 선배기자들은 “다 끝났는데 왜  들어왔냐”며 자족적인 말을 하곤 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사생활도 없고 월급도 적지만 내가 쓴 기사로 인해 사회의 부조리가 개선됐을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 언론인이 되고 싶어하는 본교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해달라.
- 내가 충고하고 싶은 점은 가장 건전한 상식을 가지란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있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물론 글쓰기 실력은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언론인은 그 직업의 특성상 권력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업이기 때문에 권력을 사양할 수 있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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