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초록과 붉은색의 물결이 거리를 뒤덮을 때가 두 번 있는데 한번은 크리스마스 즈음이고 또 한번은 독립기념일 무렵이다. 뱀을 입에 물고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서 있는 국기의 바탕이 초록과 흰색, 붉은색이라 그런지 이 색깔들은 이곳에서 무척 사랑 받는 조합이다. 해마다 9월 15일이 가까워지면 각 구청의 광장과 시내 주요 거리들은 색색의 깃발과 꼬마 전등으로 가득 찬다. 9월 15일 밤 대통령궁의 발코니에 나와 대통령이 만세를 외칠 때, 그 주변의 거리와 구청의 광장들을 꽉 메운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로 멕시코 혁명의 영웅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같이 부르는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순간만은 “멕시코 만세, 혁명 만세”가 이쪽 사람들을 한순간 집중시키는 구호가 된다. 관이 주도하는 행사에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가하여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셈이다. 그것도 혁명의 구호들을 외치면서. 하지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기에 이 혁명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농민에게 토지를!”이라는 구호로 혁명의 영웅이 되었던 에밀리아노 사빠따의 정신과 이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치아빠스 농민혁명군이 국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비단 멕시코에 국한되는 일만은 아니고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해당하는 일이겠으나 특이한 것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에 별 상관없이, 또 애초의 의도에도 구애받지 않고 대중들이 열린 잔치마당과도 같은 자신들만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약간 비틀어서 본다면 어차피 만들어진 국가주의의 환상 속에서 환호하고 꿈꾸는 축제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가족, 친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 마당에 와서 울고 웃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한다.

크고 작은 축구 경기가 있을 때에도 이 독특한 대중적 열기를 통한 공간의 확보는 마찬가지로 이루어진다. 국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20대를 보낸 터라 처음에는 이 열기에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네 시간으로 정해진 전체 필수 수업은 늘 30분 정도 초과하기 일쑤였는데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4, 50대 동기 아저씨들이 먼저 나서서 오늘 좀 일찍 마치자고 건의하는 식이다. 지난 월드컵 때의 열광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 잠을 자나 싶을 정도로 경기가 있는 날마다 또 가족과 친구들은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해  떠들썩하게 밤을 새곤 했는데 멕시코가 출전한 경기 뿐 아니라 같은 언어와 비슷한 문화, 역사적 전통을 가진 꼬스따리까, 아르헨띠나 등은 물론이고 스페인어 사용 국가들이 다 떨어져 나간 다음에는 저 멀리 브라질과도 갑자기 비공식적인 혈맹이 되어서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 이기기라도 한 날에는 축하의 이메일과 전화, 포옹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재미있는 기억이었고, 경기를 보다 잠깐 잠이 들어 수업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난 후 허둥지둥 뛰어가 고개 숙이고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선생이 “한국이 이겨서 파티하느라 수업 안 올 줄 알았지”라며 축하만 해 줄 정도이니.(우리나라 신문들에서처럼 굳이 구분하자면 우남대학에서 좌파 아닌 선생을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우루과이 출신의 어느 작가는 “(축구) 이면에서 작용하는 정치적, 경제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나라들의 선전을 보는 것은 정신적 카타르시스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일반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유토피아나 이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도달하고 싶은 바람들의 반영으로 본다면, 멕시코나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대중적 열광도 정부에서 이리저리 차려 놓은 잔칫상에 자신들의 이상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담아내는 그릇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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