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창 밖에서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이 흐르고 있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 가나, 테마라는 항구 도시의 한 마을에 와있다.

이 곳에 온지도 거의 일주일이다돼 간다. 이렇게 잘 지낼 것을 공항에서 가족들과 나는 왜 그리도 긴장하고 허둥댔는지! 무게 제한을 넘어버린 짐을 싸고 풀기를 수차례 결국 패널티로 15만원을 지불하고서야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기대와 걱정으로 홍콩과 남아공을 거치는 동안에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점점 비행기 안에 검은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프리카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25일 금요일 오후 5시!  드디어 가나의 아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검구나!’ 공항에 내려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한국인 선교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긴 전에는 세상이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긴장을 풀어보려 애썼지만 길가 곳곳에 서서 ‘오브로니’(외국인을 가리키는 가나말)를 외치며 물건을 파는 가나인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는 매 한가지였다.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를 안내받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들은 후, 숙소에 짐을 풀고 그렇게 가나에서의 첫 날은 너무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이런 저런 식료품들을 사러 테마 현지의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갔다. 좁은 시장 바닥을 거닐 때마다 온 거리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피부색깔의 차이가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경험이 드물었던 나로서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나의 피부색에 대한 관심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것은 주말이 되어 시골마을의 아이들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보다 외국인을 볼 기회가 훨씬 적은 마을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흰 피부색과 곧게 뻗은 머리칼을 가진 나의 모습이 꽤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모양이다. 노래를 가르쳐주고, 종이접기를 하고, 동화책을 읽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뚫어져라 내 얼굴을 바라보고 피부를 만져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수십 명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함께 얘기하는 몇 시간동안 얼마나 많이 긴장했는지,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는 손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주말이 지난 후, 드디어 나의 본격적인 출퇴근이 시작됐다. 내가 앞으로 5개월 동안 활동하게 될 봉사단체는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설립한  S.A.M COMPUTER CENTER이다. 이 곳에서는  가나인들에게 3개월 동안 무료로 컴퓨터의 기본적인 과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 학교는 매 코스마다 시험을 본 후 그것에 통과한 사람에 한해서만 자격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자격증이 취직을 하거나 승진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은 다음 학기 접수 기간이었다. 무료인데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많은 현지인들이 접수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가르쳐 주며 접수를 받는 동안 여러 가나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들은 각기 △선생님 △변호사 △소방관 △간호사 △의사 △대학생 등 이 나라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는 가나의 모습은 시장 거리와 시골 마을을 거닐면서 느끼는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새로운 컴퓨터 선생으로 왔다는 자그마한 한국인에게 커다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들에게서 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한번도 컴퓨터를 다뤄 본적이 없다는 그들은 컴퓨터를 켜는 법조차 모른다며 웃어보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고, 한국인을 만난 것에 신기해하는 가나인들과의 만남으로 또 다른 하루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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