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는 본교가 학교법인 우석학원(이하 우석대)을 흡수·병합하면서 본교에 설립됐다.

우석대는 1936년에 창설됐으나 1970년 2월 이후 심한 경영난에 빠져 문교부(지금 교육부)에서 경영자를 물색, 10여개의 학교와 경쟁을 벌인 끝에 본교가 우석대를 인수했다.

본교는 우석대와의 합병을 통해 서울대학에 비등할만한 규모와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의대 설립에 주안점을 둔 병합이라고 봤을 때 본교로서는 큰 숙원을 푼 것이다. 하지만 의과대학의 설립을 위해 당시 이공계 건물을 짓다가 포기한 아쉬움을 남겼다.

본교와 우석대의 합병을 놓고 당시 본지에서 재학생 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3.9%가 장기적 안목에서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으며 72%가 찬성 의사를 20.9%가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 반대의 이유로는 우석대와 병합함에 따라 이제까지의 전통이나 고유의 이미지가 흐려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석대 졸업생을 교우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학교의 합병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가진 채 1971년 첫해 의학과(의예과) 신입생 1백명을 맞은 의과대학은 의대와 병원의 시설을 정비 ·확충해나갔다. 당시 서울대가 5백여 병상, 연세대가 6백여 병상, 성모병원이 3백37여 병상인데 비해 본교 병상은 2백75병상이었다. 본교는 병원의 공사를 중지한 병원건물을 완공해 3백50병상 수준으로 증설한 후, 15만 달러 어치의 병원 자재를 구입해 병원의 시설을 보충했다.

또한 당시 의대병설로 되어있는 의학기술초급대학은 국내유일의 특별대학이었지만  7개 학과의 14학급에 강의실은 8개 밖에 없어 강의실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강의의 76%는 시간강사에 의존하는 형편이어서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로 했다.

인수 당시 김진웅 기획처장은 “인수과업에 따르는 당면목표로서 의대와 병원의 자재를 정비하고 확충, 발전시켜 경쟁대학인 연대를 능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의과대학의 발전에 대한 결의를 밝혔다.(본지 71년 1월 1일자 발췌)또한 서순규 병원장은 “공사를 완공한 후 교수진을 더 늘려 학구적인 대학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나가겠다”며 의과대학의 발전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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