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 24시간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곳은 어디일까?”

화창한 봄, 캠퍼스 투어를 하면서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문과대학 시계탑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1955년 준공된 고딕 석조건축물인 서관 5층의 시계탑은 직경 6척의 대형시계로 1968년도에 설치됐다. 시계탑은 그 당시 쌍용 회장인 김성곤 교우가 희사한 것으로 일본과 미국 등지에 주문해 만들었다. 하지만 탑시계가 작동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시계탑의 특색은 다른 학교나 건축물에 있는 단면의 시계탑과는 달리 4면이라는 것이다. 시설팀 직원 강재희 씨는 “서관에 있는 시계탑은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4면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계를 사람이 돌린다는 소문은 시계탑의 규모가 크기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퍼진 것 같다”며 “시계탑은 설치된 당시부터 지금까지 기계로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문과대학의 3층 기계실에서 시계탑의 모터 4개가 연결돼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계탑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옛날에 배꼽시계가 있었다면 본교생들에게는 서관의 시계탑이 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가 본교에 울려 퍼질 때면 학생들은 정오를 알리는 것으로 알고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간다. 이 노래 소리는 인문계 캠퍼스뿐만 아니라 참살이길을 넘어 자연계 캠퍼스까지 들린다. 이는 처음 시계탑을 설치할 때 자연계 캠퍼스까지 들리도록 한 것이다.

왜 하필 구슬픈듯한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를 선곡했을까.

1960년에 선곡된 이 곡은 왜 정해졌는지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우스갯소리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민족고대인 만큼 녹두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뜻에서 했다는 기록도 있고, 그 당시 ‘파랑새요’ 노래가 아니면 아리랑일텐데 아리랑보다 낫지 않느냐는 말도 있다. 하지만  교우가 설치했기 때문인지 학교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시계는 10년 정도 돌리다가 기계를 바꿔 총 2번 교체했다. 지난 2002년 2월에는 기계부분의 최종적인 개수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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