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들은 도시를 배회하며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책 읽는 이들의 고요한 사유만이 오고 갈 이 공간은 천사에게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낸다. 우남 도서관의 소음도 천사들에게만 들리는 것이면 얼마나 좋으랴.

우남(Unam) 대학의 도서관 풍경은 이 도시의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일 것이다. 도서관이 홀로 틀어박혀 책을 찾아 읽는 곳만은 아니겠지만, 여기는 우선 너무 시끄럽다. 눈치 모르던 유학 초기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째려 보기도 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꼭 열람실에 앉아서 소곤소곤 토론을 해대고 함께 리포트를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먹어대기도 하고 키스와 포옹도 나눈다. 친구들끼리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할 때의 그 기나긴 안부는 또???.  완전 개방이라 무리지어 숙제하러 오는 중 고등학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도서관 바깥이라고 다를 것인가. 전통 타악기 연주에 축구에 배구에, 또 가끔은 집회에 늘 함성이 끊이질 않으니. 이쪽 사람들의 집중력이 남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후가 되면 중앙도서관 앞에서 복제 음반을 파는 행상들이 누구라도 듣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음악을 튼다. 금요일 오후면 파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노래, 뭐 이런 식이다. “부드럽게 키스해 주세요” 최대의 볼륨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가사. 그래도 열심히들 책을 찾고 읽는다.

지식이란 것이 홀로 견고하게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에 힘이 실리는 어떤 것이라면, 우남의 도서관은 출발에서는 일단 이상적이다. 바코드 같은 것으로 출입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대출하는 데는 학생증이 필요하지만 복사만 해서 나오는 것이라면 잡지와 논문을 제외한 모든 단행본은 손닿는 곳에 있다. 중앙도서관과 단과대 도서관 뿐 아니라 각 연구소에의 소장본들도 훌륭하다. 문제는 활용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도서관 내의 복사하는 곳은 기나긴 줄에, 한장 한장 확인하지 않으면 불량으로 복사해주기 일쑤라 잘린 곳, 잘못된 복사의 원본을 외국인이 유추해가며 읽는다는 건 대체로 불가능하다. 겨우겨우 복사를 하고 집에 와서 읽다가 잘못 복사돼 읽을 수 없게 된 한 두 쪽을 발견할 때면, 해독 불가능한 그 곳에 뭔가 결정적인 내용이 있을 것 같은 미련을 떨칠 수 없게 된다. 갈수록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책을 정독하기는 어렵고 학교 안의 다른 곳이나 바깥에 마음에 드는 복사가게를 정해 놓는다. 좀처럼 파본을 내지 않는 곳으로. 그러려면 대출을 해야 한다. 학생이 속한 단과대 도서관과 중앙도서관의 출입증을 받을 수 있지만 연구소나 다른 단과대 도서관의 책을 대출하려면 자신이 속한 단과대에서 협조공문을 써주는 것이다. 그 문서를 신청해서, 담당자의 싸인을 받아서 필요한 도서관으로 이동하는데, 책 빌릴 때마다 해야 하는 짓이다. 이 대단한 관료주의는 때로 야심만만하던 학습 의지를 꺾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선생들은 책을 잘 빌려준다. 책값이 비싸서 사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겠고, 언어와 사회문제를 공유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출간된 책들을 나름대로 발 빠르게 접하게 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선생들이나 친구, 친척들이 외국에 나갈 때 책 구입을 부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가는 쪽에서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나 이번에 어느 나라 학술  회의에 가는데 자료 필요한 것 있으면” 하는 식으로.

하지만 책 읽는 분위기 자체를 배려해주는 곳은 없다. 알아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도서관이 열려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고 이웃도 시끄럽고 학교도 시끄럽고. 지식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는 것에 과대한 경건함을 부여해온 것이 또한 우남에서의 책읽기에 어려움을 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좌석에 칸막이가 설치된 다른 대학의 도서관에 함께 간 친구의 말. “처음 한 십 분은 엄청나게 집중이 잘 되더라고. 근데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숨이 막혀서 못 앉아 있겠어. 여기는 감옥이야” 아닌 게 아니라 작은 건물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된 멋진 건물이 푸코의 원형감옥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옥영란(멕시코 우남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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