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말의 외환위기부터 본격화된 기업들의 구조조정의 추세속에서 비정규직은 국내 노동시장의 주요한 고용형태로 자리잡았다. 이 근로자들은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 있고 4대 보험이나 각종 후생복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또 이들은 회사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지면 일차적인 감원의 대상이 되며 평균근속연수도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온갖 불공평한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 비정규직 비중의 증대는 사회계층간 근로자간 빈부격차의 확대라는 사회문제를 낳는다.

이 현상을 채용과 관련된 경영자들의 고유권한이고 상품시장에서 불안정한 수요의 변동이나 경쟁을 위한 비용절감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단원론(unitarism)적 시각이 존재한다. 반대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고용관계를 맺는 노사간의 힘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불리한 고용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여러 사회 및 경제문제가 야기된다는 시각은 다원론(pluralism)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야기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노조와 같은 사회주체들의 적절한 개입이나 규제가 필요하다.

두 시각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한 근거도 있다. 이윤창출을 위한 기업활동은 지속돼야 하고 이를 위해 인사권 등은 사용자들이 가진 고유한 권한이라는 첫 번째 시각은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이윤만을 신경쓰는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나 그로 인한 사회문제는 뒷전이므로 이러한 시장실패가 시정되어야 한다는 두 번째 시각도 인정이 된다.

실제로 노동시장에서 학생이나 노년층 및 기혼여성등의 근로자들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상황하에서 한시적이나 시간제와 같은 비정규직 고용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백화점의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 혹은 조선산업처럼 수요의 변화가 큰 경우에는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애써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채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통계수치만을 가지고 논의하는 비정규직 상황보다도 고용형태별로 산업별로 기업별로 비정규직의 고용조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나은 상황일수도 있다. 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노조나 정부가 요구할 수 있는 기업풍토 하에서 어떤 국내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이 기업활동을 하고 싶을까 하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에 대한 다원론적 시각에 대한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단원론적 시각이 가지는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우선 아무리 산업경쟁력이 중요하고 경제회생이 중요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고용조건을 사용자들이 결정하게 맡겨두면 되는 것인가?

노동비용면에서 중국이나 주요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서 높은 수준인 국내의 상황하에서 기업의 근시안적인 임금낮추기 전략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더욱이 국내의 노동법은 자유로운 시장메커니즘의 병폐를 줄이는 방향으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개인의 고용권들에 대해 각종 규제를 해왔고 비정규직의 보호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최근의 발전방향은 더 높은 경제수준을 달성하고 삶의 질의 향상을 추구해 왔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상황판단에 근거하면 기업들에서 유행과 같이 혹은 근시안적인 방식으로 퍼져가는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서 적절한 규제가 고민돼야 한다.

정주연(정경대 교수, 노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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