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look at movies, magazines and TV ads, they are usually filled with images of white people living the good life. As long as this is so, I can not help but identify myself as ‘black’. Blackness is my armor against the numerous daily onslaught of whiteness. (South Africa 신문의 사설)

흰색에 대한 인간 본성의 근원적인 동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곳에 와서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은 피부색과 관련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나라 국민의 다수가 흑인이지만 이들 대부분의 동경과 관심은 조금 더 하얀 피부를 가진 외국인들에게 향해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이 평등하다고 외쳐도, 결단코 서로를 대등한 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서글프고 화나는 일이 틀림없다.

이번 주에는 오랜 시간 계속돼 온 흑인 차별의 뼈아픈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적지를 찾아가 볼 기회를 갖게 됐다. 대서양 흑인 노예 무역의 최대항구로 쓰였다는 케이프 코스트(cape coast) 유적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크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케이프 코스트는 가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자,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야자수가 거리 양 옆을 아름답게 장식한 해변가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복잡한 어촌 마을을 지나 해변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을 만나게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 같은 해변가에 서서 파란 하늘과, 그것보다 더 푸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도, 여기서 수많은 흑인들이 동물처럼 백인들에게 끌려갔다는 것도 연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해변가에 세워진 성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대규모로 송출하기 위해 지어진 집단 임시 수용소였다. 성안의 흑인 수용소는 천장에 달린 두 개의 창문과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 한 가운데의 자그마한 골이 시설의 전부였다.

동물처럼 사슬에 묶인 채 수십 수백 명씩 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 노예로 팔려갈 날을 기다렸을 것을 상상해 보았다. 혹시 도망갈까 싶어 수용소의 입구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고 나오는 순서대로 바로 배에 실어 갔다는 장소를 보며, 인간 존재의 잔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일까.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열등한 생명체로 인식되었을 흑인들의 한 맺힌 역사의 현장. 그 한 가운데 서서 흑인들이 가지고 있을 뼈아픈 슬픔과 피해의식을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미국에 있는 흑인들은 이 곳에 와서는 눈물을 흩뿌리며 돌아선다고 했다. 몇 백년 전,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처음 건너온 조상의 흔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백인들의 노예로 동물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새로운 땅에 자리 잡아 살아온 흑인 역사의 질곡은 그들에겐 분명 견디기 힘든 분노로 자리 잡아 있을 것이다.

흑인이라면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한다는 유적지 케이프 코스트에서, 인종 갈등을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황인종의 한국 대학생인 나는 그렇게 이들을 이해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게 됐다.

흑인 노예무역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전시관의 마지막 코너에는 여러 대표적인 흑인 명사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마틴 루터킹 목사의 사진 앞에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검은 얼굴과 그보다 조금은 더 흰 내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러 번 책에서 읽어왔던 그의 연설 ‘I have the dream’이 사진 속 진지한 그의 표정과 함께 실감나게 떠올랐다. 그의 꿈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사진 속 그와 내가 친구처럼 다정하게 나왔노라 읊조려 본다. 이렇게 나의 케이프 코스트관광은 여러 깨달음들과 함께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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