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든 이른바 ‘민족의 사상’이 있다. 그 사상은 각 민족의 ‘고유사상’과 외부로부터 전래된 ‘외래사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유사상과 외래사상이 융합돼 각 민족의 ‘전통사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도 고유사상이 있고, 외래의 유·불·도 사상이 고유사상과 융합돼 전통사상을 형성했다. 오늘날에는 서구로부터 기독교와 각종 사회사상이 전래돼 기존의 전통사상과 함께 새로운 사상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의 고유사상은 대개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단군신화는 요약하자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하느님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인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서,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를 건설했다.

이후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땅의 곰이 변한 웅녀와 결합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우리 민족의 이상향 ‘신시’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펼쳐지는 터전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웅녀가 결합된 존재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한다.

첫째, 현세중심주의이다. 단군신화에는 현세 이전의 세계의 기원이나 내세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의 삶’만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세를 고해(苦海) 또는 불의(不義)의 땅으로 보고 탈출하려는 출세간(出世間) 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현세를 중심으로 삼는 입세간(入世間) 주의이다.

다른 종교 특히 서구적 종교의 맥락에서는 ‘현세중심’이라 하면 단순한 세속주의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단군신화의 현세중심은 결코 단순한 세속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군신화의 현세[人間]는 하느님도 탐냈던 현세요, 하늘의 뜻이 펼쳐지는 신성한 터전[神市]이었다.

둘째, 인본주의와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인간관이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이 세계의 중심적 공간은 현세이다. 현세의 주체는 인간으로서, 하늘의 뜻과 땅의 소망이 인간을 통해 실현된다. 이처럼 단군신화는 인본주의를 표방하는데, 그것은 하늘·땅과 대립하는 인본이 아니라 하늘·땅을 수렴하는 인본이다. 같은 맥락에서 단군신화에 의하면 인간은 영(靈)만도 아니고 육(肉)만도 아닌, 영과 육이 통합된 존재이다.

또한 인간의 육은 분명 땅[곰]의 육이되 그것은 일정한 수련을 통해 얻어진 육이었으며, 동시에 하늘의 영을 담고 있는 육이었다. 과거의 종교사상은 대개 영을 강조해 금욕주의로 기울었다. 현대적 인간관은 대개 마음마저 몸으로 환원시켜 물신주의를 조장한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영과 육의 조화를 지향한다.

  셋째, 삼재 사상을 관류하는 정신은 화합(和合) 또는 묘합(妙合)의 정신이다. 단군신화에서는 하늘과 땅, 영과 육을 모순이나 갈등의 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하늘의 뜻과 땅의 터가 만나서 ‘신시’가 되고, 하늘의 영과 땅의 육이 만나서 ‘단군’이 된다. 단군신화에서는 대립적인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묘합시켜 ‘인간[세상·사람]’으로 통합하고 있다.

넷째, 위의 내용에서 이미 엿볼 수 있듯이, 낙천적 성격이다. 또한 하느님은 고심 끝에 독생자(獨生子)를 땅에 내려보낸 것이 아니라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인 환웅을 그의 소망대로 내려보낸 것이며, 인간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가혹한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환웅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에게 백일간의 금기(禁忌)를 명하고는,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짧은 삼칠일[21일]만에 소원을 들어주었다. 단군신화에서는 절망적인 긴장도 보이지 않고, 시련도 가벼우며,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

  신라 말기의 최치원은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을 풍류도(風流道)라고 규정하고, 그것은 본래 유·불·도 3교의 핵심을 두루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우리 고유사상의 현세 중심적 특성은 신라 말기에 유행했던 미륵사상이나 조선 말기의 각종 신흥종교에서는 ‘현세구원사상’으로 표출됐다.

흔히 오늘날 한국의 종교는 현세적 기복(祈福)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본래 신성을 내재했던 고유의 현세중심주의가 타락한 모습이라 하겠다. 한편 고유사상의 인본주의는 동학에 이르러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표출됐고, 묘합적 특성은 원효의 화쟁(和諍),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으로 표현되었다.

오늘날 태극기를 국기로 삼은 것도 ‘음양의 묘합’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래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나 각종 사상들이 토착화되면서 또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두고볼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유사상과 융합돼 한국화될 때만 생명력있는 사상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익(영산대 교수, 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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