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듯이 어떤 가치가 영속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가치관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이 지상에 존재하는 한 남아 있을, 혹은 남아 있어야 할 책들은 많다.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들고 싶다.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중 한 부분이다. 그는 역사기술의 방법을 몇 가지의 분야별로 기술하고 전체를 통합해 파악하는 방법을 택하였는데, 그 역사기술 방법 가운데 하나로 70명의 인물을 택하여 짧은 전기를 모아 놓고 ‘열전’이라고 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양의 대표적 상(像) 이라고 할 수 있다. 충신과 간신, 장군과 병사, 모사꾼과 사기꾼, 진정한 우정, 배신의 전형, 동양적 어머니의 전형 등 모든 인물들이 들어 있으며, 후대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여기에 묘사된 인물들을 실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혹은 가공인물로 등장시켰다 하여도 여기의 인물을 각색한 것을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뛰어난 묘사는 소설가를 능가하는 것이다.

모든 분야의 동양학을 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학생들의 용어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고, 필자가 이번에 권면하고 싶은 대상은 오히려 서양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세계적인 학문 연구의 추세는 학제간의 연구이다. 자신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남의 것을 보아야 사물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연구한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려고 한다면 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새로운 관조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그것을 넘어설 수도 없을 것이다. 즉 창조적인 연구 결과를 얻기가 힘들 것이다. 이 책에는 동양인의 인생관, 동양인의 가치관, 동양인의 군자와 소인배가 모두 함께 출연하여, 자신들을 웅변으로 나타내고 있어 서양인의 가치관 혹은 성격과 비교하기가 용이하다.

문학을, 특히 소설을 읽는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소설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각종 인간의 파노라마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먼 옛날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 활동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문학작품 가운데 셰익스피어만큼 성격을 독특하게 나타내고, 그 언어를 완벽하게 사용하여, 살아있는 있는 인물로 창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묘사에 뒤지지 않는 작가를 동양에서 찾으라면 사마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책 속에는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닌 인물과, 작은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이 있다. 각종인물의 각종성격의 대표자를 모은 인물 갤러리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 흔히 상대방의 속마음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한다는 책들이 유행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가장 빠른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인의 심리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면 누구나 밤을 꼬박 새워야 할 것이다. 중국의 사대기서의 하나인 <열국지>도 이 책을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다. 재미뿐만 아니라 대학생으로 지식까지 겸하려고, 좋은 주석이 딸린 번역서를 읽는다면  비단위에 꽃을 수놓은 격이 될 것이다.

김승옥(문과대 교수, 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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