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탁류세평]교육에서의 “만남의 선행성”에 새로이 눈뜨자
[탁류세평]교육에서의 “만남의 선행성”에 새로이 눈뜨자
  • 고대신문
  • 승인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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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의 교육특집은 온통“만남”의 이야기였다. 일부러 모아서 보았는데 모든 일간지가 다 그러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른바 “선행학습”이라 하여 2년 정도 앞당겨 가르치느라고 야단들이다. 가정과외, 학원과외 심지어는 학교과외가 그것이다. “학습”이 교육의 전부이고 그것도 모자라 “선행학습”이란다. 이것으로 들떠 가정이 망가지고 학교가 무너지고 스승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 캥겨 이 같은 만남의 특집으로 때우려하나 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스승의 날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 만남을 교육이 다시 찾고 가정에서, 교실에서 그리고 삶에서 그것을 키워내야 한다.

만남이란 무엇인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어느 날 우연히 나타나 영혼을 흔들어, 크게 일깨움 받고 진정한 자기를 찾고, 그것으로 자기실현을 하게 되는 돌발적 계기이다. 교육을 가장 진정한 의미로 자아실현 촉구로 본다면, 이 만남이야말로 교육의 알파이자 오메가, 우리말로 한다면 처음이자 끝이다. 극작가가 되려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만나 자기 천분은 철학임을 일깨움 받고 그것으로 자기실현을 하고 바로“플라톤”이 된 것이고 그것으로 또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 했다.

오늘날처럼 교육이 흔들려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지, 정말 교육에 열심히 종신하고 있는 교사일수록 더 헷갈리는 때에는, 스스로 성장하도록 따뜻한 손으로 돌보아주는 교육(식물재배적 교육관), 매와 당근으로 닥달질하여 행동과 사고를 길들이는 교육(동물훈련적 교육관), 그리고 영혼에 충격을 주어 일깨움을 일으키는 만남의 교육(각성적 교육관), 이렇게 세 개의 교육 모델, 아니 세 “차원”의 교육관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하겠다. 스승의 날에 내가 강의에서 다하지 못했던 만남의 특성 분석을 우리말로 해보면서 그 빚을 갚고자 한다.

만남의 특성 중의 첫째는 일회성(一回性)이다. 우리말로는 “한번으로 끝내준다”다. 한번으로 족하다는 뜻이요 또 그 한번의 영향이 평생 이어진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때 사랑의 매를 딱 한번 맞았는데, 나는 그것으로 사람되었다’며 그 이름 없는 스승을 추모하는 글은 참으로 스승의 날의 단골 메뉴다.

둘째는 우연성(偶然性)이다. 천만 “뜻밖에”다. 어느 날 그런 일이 벌어져 버렸다. 일진이 좋아서, 재수가 좋아서… 이렇게 말이다. 미리 계획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이것을 “은총성”이라 할 수도 있다. 교훈, 급훈, 주훈… 거기에다 몇 시간 다져 깨알같이 마련한 교안, 학습지도안 덕택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셋째는 전환성(轉換性)이다. “새 사람이 되다”이다. 그것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살인강도가 회개해서 목사가 되었다는 사례가 이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회개 ”라는 말은 원래 삶의 방향이 새로워졌다는 메타노이아다.

넷째는 운명성(運命性)이다. “임자 만났다”이다. 그것으로 자기 삶이 결정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충격으로 원고뭉치를 불살라버리고 마치 개구리가 뱀에 홀려 꼼짝달싹 못하고 먹히듯 소크라테스에 홀린 플라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다섯째는 창조성(創造性)이다. “내 몫 찾음”이다. 그래서 제 몫, 즉 하늘이 준 자기 소실과 능력을 키워 자기를 실현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이웃과 역사에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참새한마리에도 다 존재의 의미 즉 몫이 있다. 이런 뜻에서 나는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이 겨레에 몫을 다진 명저 중의 명저로 본다.

여섯째는 결단성(決斷性)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둘 중의 하나를 목숨을 걸고 바로 택하는 일이다. 미적거린다면 만남이 아니다.
 
그리고 끝으로 일곱 번째는 인격성(人格性)이다. “가슴과 가슴으로”이다.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을 울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 그리고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남은 지식이나 기술의 소산이 아니다. 가슴과 가슴, 삶과 삶, 사랑과 사랑…등 인격적 계기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만남에 예술, 진리, 학문 등과의 만남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만남도 스승과의 만남 덕택으로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인격매개성이다.

김정환(명예교수·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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