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순간에 모두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장은 어제처럼 돌아가고, 식당에선 밥이 제때 나올 수 있을까? 이런 황당한 실험이 공상에서가 아닌 현실 속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진 신고한 26만5848명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2003년 3월말까지 예외 없이 내보내기로 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80%가 불법체류자인 현실에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내보낸다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을 강제 추방한다는 것과 같다.

정부가 이런 방침을 내놓았을 때 ‘실제 상황’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인광고를 내도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중소기업에게, 현실적으로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시한을 못박아 모두 내보낸다는 것은 사실상 공장 문을 닫으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갈 항공편과 배편은 또 어떻게 마련한다는 것인가? 그동안 정부가 불법체류자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해왔고, 1년에 한번 꼴로 ‘자진신고-강제출국’ 카드를 남발해왔다는 점도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특유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불법체류자를 싹 쓸어버리고 필요한 인력은 다시 받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썩은 물은 빼고 깨끗한 새 물을 채우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처럼 손쉽게 교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삶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거액의 브로커비를 지불한다. 이 비용을 갚고 얼마간 돈을 벌어가자면 최소한 2∼3년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교적 한국어에 익숙하고, 작업 능률도 높다. 이들을 무조건 나라 밖으로 내모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강력하게 ‘투망식’ 단속을 벌일 수록 더 깊숙이 더 처절하게 숨어들 게 분명하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 한국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아쉽지만 희망을 포기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국제사회에서 ‘거짓 연수제’라고 조롱받는 현행 제도로는 사용자나 노동자 모두 범법자가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한 정책을 연발하며 고집스럽게 산업 연수생제를 수호하는 정부의 저돌성이 안타깝다.

며칠 있으면 부산에서 아시아인의 축제가 열린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43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첫 대회로 뜻깊은 ‘평화와 화합의 마당’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제출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겐, 그러나 그저 남의 잔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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