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는 변명으로 가득한 나라인 것 같아’

가나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다. 얼마나 더 이 곳에서 지내야 이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금 물어보게 되는 요즘이다.

이번 주 수요일, 샘(SAM) 컴퓨터 학교는 다음 학기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을 가졌다. 2백명이 넘는 학생들의 순서를 정하고 이들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벽부터 와있는 학생들에게 차례로 번호표를 나눠주고, 상황을 정돈한 후, 학생들의 인터뷰를 시작하려 했을 때였다. 늦게 온 학생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정들을 말해오는 것이 아닌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오는 이들도 많았지만, 너무도 간곡히 부탁해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 둘 사정을 봐주다 보니 아침부터 번호를 받아 기다렸던 사람들이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 아닌가. 일찍부터 온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보며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설명한 후 번호대로 순서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학생들의 상당수가 사무실로 들어와 빨리 면접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부탁을 해오는 것이었다. 하나도 아파 보이지 않는 얼굴로 아프다고 말하고,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 얼굴로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뻔한 거짓말들을 보며, 이 나라에서는 거짓말이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는가 싶을 정도로 의아스러워졌다.

왜 그들은 진실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을까. 교과서에도 변명과 거짓말을 풍자한 내용이 있을 정도로 가나에서는 거짓말이 일상적인 일인 듯 하다. (이 곳에서는 장례식을 가장 큰 행사로 여기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간다는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오늘은 작은 아버지, 내일은 큰 아버지, 다음날은 할머니의 장례식,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은 또 얼마나 희박한지 모임의 행사들은 예정된 시간 앞뒤로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일쑤이고, 관공서의 행정처리 또한 마찬가지여서 서류 하나를 구하기 위해 2~3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이 모든 모습들이 너무도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내게 지난주에 샘 학교를 방문한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이들에겐 거짓말하는 것보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이 더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고. 우리 눈에는 이들이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나름대로 타인을 화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시간 개념이 없다며 불만스러워 하는 내게 그 선교사는 시간의 구획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느냐 반문했다. 시간의 구분을 조금 더 뭉뚱그린 채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삶보다 가치가 덜한 것이라 규정지을 수있느냐는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우리의 상식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평생을 함께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논리적인 사고는, 늘 상 더운 날씨에서 비롯된 면이 클 것이다. 한낮의 더위 속에 무슨 일을 하려다 보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조차 버거워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비위생적이게 보이는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이들에게 식사시간에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귀찮은 일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 보다 손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식사방법이었을 것이다. 관공서나 은행, 식당 어디를 가나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이들에겐 시간과 스피드가 중요한 경쟁력이 아니기 때문 아니겠는가.

나도 모르게 이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이렇게 그들에 대한 이해의 끈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며칠 후면 새로운 학기의 입학식, 이제 내게도 3개월을 나와 함께할 나의 학생들이 생기게 된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앞에 설 나를 상상하며 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문화도 피부색의 차이도 사람의 진실된 마음보다 더 강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가나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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