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e Universite’, 파리 국제 기숙사를 방문한 날은 진눈깨비 같은 비가 내렸다. 여름 장마철 지루한 빗줄기를 보는 듯한 유럽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파리 국제 기숙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밤길은 설레임으로 가득찼던 것 같다.

Cite Universite 지하철역 건너편에서 바라본 파리 국제 기숙사는 정문에서 바라본 본관과 중앙광장을 떠올리게 했기에 친숙하게 다가왔다. 파리 국제 기숙사 관리자와의 인터뷰 약속 시간에 쫓겨 더 둘러볼 겨를도 없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관리자 브누아 바르데는 파리 국제 기숙사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60년대, 프랑스 정부에서는 파리에서 공부하는 전 세계의 학생들을 위해, 대규모 기숙사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뜻을 많은 국가에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이렇게 지어진 파리 국제 기숙사에는 지원한 국가의 각 국명이 붙어있다.

미국관, 독일관, 일본관, 인도관, 캄보디아관 등등. 파리 국제 기숙사는 같은 규모 일반 기숙사보다 절반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각 국가의 학생들에게 자국관을 임대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관은 없다. 파리 국제 기숙사 준공 당시 프랑스 정부가 한국 정부에게 땅을 줄테니 한국관을 지으라고 제안 했으나 외화 절약차원에서 설립을 거부했다고 한다. 한국관이 없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미국관, 영국관, 일본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생활한다.
 
지동혁 <고대신문> 파리통신원의 도움으로 1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자 점심시간이 됐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 배를 채우고 둘러보기 위해 학생식당이 위치한 국제관으로 향했다. 파리 국제 기숙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메종 앙떼흐냐쑈날(국제관)’에는 학생식당을 비롯해 도서관과 공연관이 있다.

학생식당에서는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으며 프랑스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의 학생식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이 따로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과일과 야채가 가득 담겨진 식사가 식당 한쪽 테이블에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 쌀보다 길쭉하고 윤기없는 쌀밥과 칠면조 요리를 먹었는데 너무 느끼해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학생 식당 옆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서울대 불어교육 3학년을 마치고 교환학생으로 와 파리4대학 소르본에 재학 중인 구정은 씨를 만났다. 구 씨는 파리 국제 기숙사의 영국·프랑스관(College Franco-Britannigne)에서 살고 있었다. 파리 국제 기숙사는 파리 일반 스튜디오의 절반가격도 채 안되고 시설면에서도 최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된 사람에 한해 선발하며 그 기준도 엄격해 들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구 씨의 경우도 합격확인서를 받고 파리내 대학의 학생이라는 증명서를 제출한 후 대기명단에서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구 씨는 “파리 국제 기숙사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 씨가 살고 있는 영국관의 경우 ‘인터내셔널 디너’라는 행사를 통해 영국의 음식을 선보인다. 또, 수시로 파티를 열고 다른 국가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초청해 영국 문화를 알린다고 한다. 인도관에서는 요가 강좌를 하는 등 각 국가의 기숙사에서 자국의 문화를 자랑하는 행사가 활성화돼 있다.

이처럼 파리 국제 기숙사는 단순한 투숙 시설이 아닌 세계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구 씨는 “문화를 알리는 데 자국관은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곧, 한국관의 부재는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통로가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국가관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모임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국제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파리 국제 기숙사에 한국관이 생겨 우리나라 학생들이 ‘사물놀이 한마당’이나 ‘김치 음식전’행사를 주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시행하는 수많은 외교 정책보다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구 씨는 “파리 국제 기숙사의 학생 개개인은 자국을 대표하는 홍보대사일 수 있다”며 한국관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구 씨가 살고 있는 영국관을 둘러보고 파리 국제 기숙사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뜻밖의 저녁식사에 초대됐다. 취재에 도움을 준 파리 국제 기숙사 이란관에 살고 있는 이윤주 씨가 저녁을 대접했다. 대접받은 저녁상은 마치 파리 국제 기숙사를 대변하듯 여러 나라의 문화가 담겨있었다. 프랑스산 와인과 인도의 카레, 그리고 한국의 된장국과 김치로 차려진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추적이던 비마저 그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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