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동굴벽화부터 점토판, 파피루스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기록을 관리해 왔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뛰어난 기록 보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자신이 수행한 공사를 기술하기 위해 수많은 사실들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사관은 매일의 중요사를 기록했다.

또한 각 가문의 문중에 보존된 고문헌들은 치밀하게 관리됐고 일반 백성들 역시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유지했다. 우리 선조들은 경전이 벌레먹지 않도록 황벽(黃蘗)이라는 나무껍질로 물들여 기록을 보존하려 노력을 했고, 당대의 역사를 대규모로 편찬하고, 사고를 여러 곳에 지어 중요 기록을 보존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예전의 좋은 전통을 계승하지 못하고 기록문화가 심각할 정도로 낙후됐다. 기록문화가 낙후된 이유로 김성수(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일제의 강압 정치와 해방후  장기간의 독재정치는 우리 사회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풍토를 조장했다”며“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만약 그 당시 기록이 발각되면 독립투사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끌려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며“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일제가 우리에게 자행한 차별, 경제수탈, 징병, 강제노동, 정신대 등 착취와 만행에 대한 기록들조차 남아있지 않게 됐다.

한편, 정부에서는 정부수립 이후 기록물 관리에 관한 기본법없이 공무수행 처리 지침에 불과한 사무관리규정에 의거해 기록물을 관리해 왔다. 또한 입법부·사법부의 정부기관, 육·해·공군, 준공공기관 등에서도 자체 내규에 의해 고립·분산적으로 관리돼 왔다.

기록보존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기본법 제정 필요성은 1980년대 후반 학계에서 제기됐다. 이러한 여론을 기반으로 정부기록보존소에서는 지난 1997년부터 법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국회 심의 결과 1998년 12월 18일 정기국회를 통과했으며 1999년 1월엶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시행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록물관리보존법이 제정됐지만 기록보존 업무는 그 중요성에 비해 인력이나 기구 면에서 취약하다. 기록법이 제정됐지만 공무원 인사법에 법령이 규정되지 않아 담당자들의 신분들이 불안정한 상태다.

이처럼 기록이 잘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으로 김선영 前 정부기록소장은 국가전반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구와 인력, 예산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다.“기록물 관리기관은 위상도 있고 법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130명밖에 되지 않는 적은 인력으로 인해 법이 제정됐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며“기록 보존을 할 수 있는 기본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법 제정과 더불어“기록보존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기록보존은 올바른 국정수행과 민족사의 전승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며 기록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일반 시민들도 기록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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