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로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상용화된지 10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터넷이 지난 10년 사이 우리 생활을 바꿔 놓은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지난 10년간 온 국민이 함께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고도성장은 이곳 프랑스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은 각종 매체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게임 최강국’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다. 지난 4월 르몽드지에서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총선 보도 기사가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같은 10년동안 프랑스가 국제사회에서 얻은 이미지 중의 하나는 ‘인터넷 후진국’이라는 오명이다. 2003년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2천2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6천만에 육박하는 총 인구수를 감안하면 아직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인터넷 수용이 유독 늦어진 이유는 ‘미니텔’이라는 독자적인 전산망 시스템이 이미 80년대 초부터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같은 멀티미디어적인 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미니텔을 사양길에 접어들게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러한 정보전산망의 대중화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너무 앞서나갔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받아들이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인터넷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프랑스의 노력은 여기저기서 관찰된다. 정부는 1998년부터 매년 ‘인터넷 축제’를 개최하며 국민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인터넷을 더 이상 남의 일 보듯 하지 않는다. 각종 매체에서는 ADSL 신상품에 대한 광고가 경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2~3년 전만 해도 손으로 꼽을 만하던 파리 시내의 인터넷 카페는 이제 도처에서 눈에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들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여전히 냉정한 기운이 느껴진다. 인터넷 인구 통계에서 보듯, 아직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필수적인 요소로 여기지 않고 있다. 이들의 정보 욕구는 기존의 다양한 매체들이 충족시켜주며, 이미 정착된 각종 여가 생활은 인터넷이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여지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합리론의 전통을 중시하고 기술발전에 대한 인본주의적 시각에 충실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눈에는 인터넷이 맹목적인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기술발전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이 가진 다양한 장점들은 프랑스인들도 인정하는 부분이고, 이는 인터넷의 영향력 증대라는 현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터넷의 ‘장밋빛 미러를 내다보는 시각 못지 않게 ‘기술결정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시각이 균형있게 공존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0년 만에 ‘인터넷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분명 자랑스런 일이다. 그러나 온 국민의 인터넷에 대한 경도(傾倒)가 지나친 것은 아닌지, 새로운 위상에 걸맞는 성숙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새삼 느끼게 된다.

지동혁(프랑스 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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