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0년대,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암울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장기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 받아 근무하는 동안 실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의 삶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과 관계가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제대 후 복학해 그와 관련된 책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찾아낸 책이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와 너>(Ich und Du)였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은 낭만적인 제목만큼 재미있거나 쉽지는 않았다. 마침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김정환 교수와 철학과 표재명 교수(당시 <나와 너>의 번역자)의 강의와 특강을 통해 부버의 <나와 너>에 대해 보다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다행이었다. 결국 필자는 <나와 너>에 매료되다가 박사논문까지 쓰게 됐다.   

1878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자 부버는 1923년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 시절에 그의 대표적 저서인 <나와 너>를 출간했다.

비교적 얇은 책인 <나와 너>는 3부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는 양적 부담이 없는 책이다.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근원어는 ‘나-너’와 ‘나-그것’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혹은 관계)는 ‘나-그것’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나-그것’의 관계는 대상을 따지고 인식하고 이용하며 측정(저울질)하는 관계이다. 반면에 ‘나-너’의 관계는 서로가 전존재를 기울여 참 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나-너’의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 곧 ‘만남’이다.

이처럼 부버는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즉 참다운 인간존재는 고립된 실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으로 함축성 있게 표현한다. 

부버는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인간과 인간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나’와 ‘너’의 ‘만남’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즉 영혼의 양식(soul food)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부버는 <나와 너>를 통해 ‘만나고 대화하는 실존’의 발견을 촉구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고 컴퓨터 문화가 발달하면서 ‘나-그것’의 비인격적·사물적 관계가 팽창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사회가 휴머니티를 상실한 냉냉한 사회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렵지 않은가?

여러분들이,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미래의 사회를 따스한 인간사회로 만들기 위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필자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김선보(사범대 교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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