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야학은 90년대 이후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야학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야학의 수 역시 많이 줄었다. 야학은 총체적 어려움 속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대학생들이 민중운동의 한 방법으로 야학을 조직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해 운영되고 있다.

80년대 붐을 이뤘던 야학은 주로 도시지역에 자리한 노동야학이었다. 청년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규교육과 함께 노동현실에 대한 비판도 이뤄졌다. 대학생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야학운동을 둘러싼 환경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야학외에도 노동문제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학에 주로 드나들던 노동자들과 진보적인 학생들은 야학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노동야학이 퇴조를 보이면서 야학은 생활야학과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야학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국야학협의회가 2002년 61개 야학의 운영실태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86%가 ‘검정고시야학’으로 나타났다. 생활야학 8%, 기타 4%가 그 뒤를 이었다. 노동야학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또 야학의 이념적 지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신입교사 교육 커리큘럼에 사회과학이 들어 있는 곳은 전체의 6%에 지나지 않았다. 야학이 노동운동의 진원지에서 주민교육을 책임지는 대안교육기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야학의 구성원도 변화를 겪었다. 학생층은 노동자들보다 주부층의 비율이 훨씬 높아졌고, 학교를 중퇴한 청소년층도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층을 위해 주간에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교사의 경우에도 대학생 비율이 압도적이었으나 최근 직장인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남부교육센터의 경우 10명의 교사 중 5명이 직장인이다.

야학의 성격이 바뀌면서 가르치는 내용에도 변화가 생겼다. 노동법 강의 등 노동현실을 반영하는 수업들은 사라졌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용과목인 영어회화, 컴퓨터, 사진 등의 과목을 개설하는 곳은 늘고 있다. 청소년층이 늘어나면서 검도, 무용 등 문화교육을 위한 과목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역주민과 관련된 사업들도 벌이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남부교육센터는 ‘관악지역 지방분권을 위한 포럼’에 참여해 지역자치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성동야학의 경우에도 일일호프를 통해 지역주민과의 만남을 모색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지만, 야학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학생과 교사의 수가 모두 줄어들면서 야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에 230여개나 됐던 야학 숫자는 작년 4월에는 170여개로 줄었다. 재정문제도 야학 운영자들의 고민이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3백~4백만원 가량의 지원금과 졸업생, 시민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근근이 월세를 갚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야학의 목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도 야학 구성원들의 고민이다. 예전처럼 민중교육을 강화할 것인지, 주민들과 함께하는 생활야학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학생의 수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검정고시야학이 될 것인지 확실히 정해진 곳이 없는 상황이다.

위기 속에서도 야학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광야학에서 교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영만 씨는 야학을 “기초적인 교육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기를 수 있게끔 하는 곳”이라며 “교육에서 소외받은 사람이 있는 한 야학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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