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갈 곳 없는 더위, 한 가운데 서서 오늘도 어설픈 외국인 컴퓨터 선생으로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발음하기 어렵던 긴 스펠링의 학생들 이름도 제법 제대로 부르고, 그렇게나 긴장되던 수업 시간에도 차츰 여유로운 모습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제안했던 학생들과의 런치 미팅도 무사히 네 번이나 가졌다.

식사 약속을 한 학생들은 좋은 레스토랑으로 나를 안내하고, 나를 위해 점심을 사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가끔은 자신의 집에 초대해 직접 만든 가나 음식을 선보이기도 하고, 식사 후에는 작은 선물도 내밀곤 한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의미의 사람일까. 그들의 호의에 마음 깊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이 되는 이유는 그들에게 나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백인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보여지는 검은 피부색에 대한 그들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발전된 다른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은 나를 자주 당황스럽고 안타깝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내가 만난 가나인들의 상당수는 자기 나라의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대단한 애국자들이었다. 수업 시간에 컴퓨터 키보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에는 한국말이 있고, 그 말에 따른 키보드가 있는데 가나는 가나어 키보드가 없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현지어가 있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것은 문화적으로 서구에 종속당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나의 지적에 학생들 몇몇은 수업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아프리카 인들의 맹목적인 서구 문물 동경을 비판하느라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여러 부족들의 결속체로 이뤄진 아프리카국가들에는 국민성의 개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느린 경제 발전 속도의 원인으로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며 가나도 어서 진정한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역설하곤 했다.

어디를 가나 친절한 가나인들의 국민성과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드물게 이루어낸 민주주의 정치 체제,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는 코피 아난을 예로 들며 가나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가나인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설명하려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의아스러운 것은 그렇게 열심히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을 말하다가도 정작 가나에 계속 살고 싶으냐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묻는다. 한국은 어떠냐고, 거기에도 흑인들이 많이 사냐고, 가나처럼 빌리지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한국에는 흑인이 극소수에 불과하며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이 한국말을 쓰며 살고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사정에 대해 잘 모르며, 그래서 한국인의 상당수는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정글이나 사막을 생각한다고 말하면, ‘제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 달라’고, ‘테마나 아크라처럼 좋은 도시들도 가나에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흑인에 대한 차별과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오해에 분노하면서도, 이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왜 그들 나름의 문화와 전통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렇게 그들 내부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도 왜 그들의 관심은 다른 공간을 향해서만 열려있는 것인가.

이런 고민이 들 때 마다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공평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검은 피부에 대한 열등감, 선조 때부터 시작된 노예 무역의 슬픈 역사와 현대에 들어서는 뒤진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상처 받은 그들의 자존심이 왜곡된 형태의 애국심으로 표출되는 것을 볼 때 마다 안타깝다. 이 모든 인간 존재의 불평등과 세상에 있는 모순들의 근원은 어디인가. 어떻게 해야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 해결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아프리카, 그 한 가운데에서 나는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적힌 시험지를 가득히 받아들고 있는 기분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