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로부터 본교의 건물에 대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고려대학교는 역시 민족 고대답게 석조 건물들이 많아 무게감도 있고 고풍스럽게 보입니다.’ 라든가 혹은 ‘고려대학교는 왜 건물들을 온통 돌로만 지어 놓습니까? 안암동이라서 그런가?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라는 두 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정리가 된다. 외부 사람들뿐만 아니라 본교에 몸담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들도 많은 부분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 호불호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런 일이 아니다. 이것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 개인의 예술적 능력과 그것을 공사한 시공자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여서가 아니라 그러한 건축물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건축주와 의견 수렴에 동참했던 관계자들의 시대적 철학 내지는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 혹은 도시와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의 전문적인 평가는 비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뤄질 수가 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에게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대중적인 평가는 건축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용이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석조건물이라서 무게감이 있고 멋스럽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너무 돌로만 이뤄져 무겁고 답답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컵 속에 반쯤 채워져 있는 물이 시각에 따라 달라져 보이는 경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교의 건축물에 대하여 사용상 기능과 공간 배치의 효율성 혹은 개별 건축물의 건축적 가치에 대한 심도있는 평가보다는 다만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양한 건축 재료에 의해 자유스런 디자인을 추구하는 다른 많은 대학들과는 달리 본교는 석조로 된 건축물이 주조를 이뤄왔으며 그것이 학교의 오랜 전통으로 상징이 됐다. 이것은 20세기 초 한국적 건축성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던 시대에 민족정신을 건축적으로 구현시키는데 이름이 드높았던 건축가 박동진 선생께서 1930년대 설계한 복고적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서 건축 및 역사적 가치가 드높은 사적 285호인 본관과 사적 286호인 중앙도서관(현 대학원)에 의해 석조 건축물의 전통이 시작됐다.

그리고 문과대학으로 쓰이는 서관 역시 1950년대 실현된 복고적 고딕 양식의 전통적인 석조건축물로서 건축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초기 석조 건축물에 의해 고려대학교의 이미지가 현재까지 형성돼 왔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이후 현재까지 실현되고 있는 학교의 많은 건축물들이 본교의 석조건축물에 의한 상징성과 그에 따른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건축물의 가치에는 단순히 외형과 기능만을 평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건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뤄지는 즉 인간의 역사를 통한 예술성의 표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을 두고 실현되는 건축물이 그 시기의 사회, 문화적인 현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반영하며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는가에 따라 건축적 예술성과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와는 상관없이 획일화된 듯이 보여지는 학교의 석조건축물들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은 석조 건축물이 현대의 건축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있어서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다만 서양전통 건축양식의 구태의연한 모방으로 인해 현대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그저 겉만 비슷하게 치장한 정도의 수준이라면 건축적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실현된 LG-POSCO 경영관과 같은 석조 건축물들은 상당히 잘 지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고려대학교의 동시대적 특성을 문화 예술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교양관, 법학관(신관), 인촌기념관, 정경관, 교우회관 등등의 석조 건축물들과 국제관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될 수가 있다. 특히 외부 도로에 면한 라이시움과 인촌로 제일빌딩의 석조건물 모습들은 학교 건물로서 뿐만 아니라 도시적인 측면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작년에 방문한 MIT대학의 관계자들이 세계 최고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약 300억원의 설계비로 의뢰해 의욕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 2만평 규모의 복합연구동인 Ray & Maria Stata Center를 자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 1백년간 지속된 민족 고대를 뛰어넘어 세계의 고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학교의 건축물 하나하나가 이제는 고려대학교의 세계화를 이뤄내는 역사적인 상징성으로서, 또 다른 1백년 후에도 건축사적으로 길이 남는 중요한 작품으로서 빛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여영호(공과대 교수, 건축계획 및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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