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어보라고 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특정 종교를 권하려는 것인가 하고 방어적 반응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 두껍고 지겨운 책을 무엇 때문에 읽으라고 하는가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전도할 이유가 전혀 없고, 성경이 학생들이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데 충분히 동감한다. 하지만 서양의 지적 전통의 두 줄기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며, 전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서 그리고 후자는 구약과 신약성경을 읽음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어이하랴.

구미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가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신화와 성경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그러므로 현재의 서구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의 근간에는 모두 이 두 가지 전통이 깔려있을 수 밖에 없다. 만일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학문분야의 대가들의 연구결과에 깊은 동감이나 열정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그들이 일생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추구한 이유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더 나아가서 그들이 자연,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과 고민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성경 속의 이야기들과 친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아시모프의 <바이블(Asimov's guide to the Bible)1,2>를 읽어보라.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전에도 젊은이들을 위해서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성경 전체로 확대해 쓴 이 책이 성경의 세속적인 면들에 대한 광범위한 고찰이라 밝히고 있다. 이 책 1권은 ‘오리엔트의 흙으로 빚은 구약’ 이라는 부제와 함께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의 39서책을, 그리고 2권은 ‘신약, 로마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가다’ 라는 부제와 함께 외경을 포함해서 토비트에서 요한의 묵시록까지 32 서책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 이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아시모프는 구약의 시작에서부터 에덴동산의 구체적 위치를 지도를 동원해 설명함으로써, 그곳이 신비적이지도 멀리 있지도 않은 바로 우리 동네 같이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벌을 받는 장면은 서구인들이 왜 그렇게 자유의지(free will)에 대해서 논쟁을 벌여야 하는지, 왜 노동을 징벌로써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일어난 최초의 존속살해 사건을 담담히 소개하고 동생 아벨을 죽인 형 카인이 에덴 동편 땅에 살게 되었다는 성경구절을 소개해준다. 이제 학생들은 제임스 딘이 주연한 <에덴의 동쪽>이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목이 왜 그렇게 절절하게 들릴 수 있는 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 좋은가? 나부코가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왕인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이며 그가 히브리인을 노예로 잡아가는 장면을 읽고 나면 그 합창이 더욱 비장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러시아 여행 중에 미술관에서 본 명화는 사울왕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다급한 마음으로 엔돌의 여인에게 점치는 장면이었으나 같이 갔던 친구에게는 그 스릴 넘치는 작가의 마음을 전할 수 없었다. 아시모프는 그 외에도 성경 안에서 수많은 전쟁, 정치적 투쟁과 모함, 질투와 불륜,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 들을 생생한 표현으로 끌어냄으로써 우리가 마치 그곳으로 여행가서 현장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한편의 잘 정제된 영화를 보는 듯해, 우리를 성경시대의 가상환경으로 초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책을 읽고 곳곳에 스며있는 그의 풍부한 지식과 과학자로서의 객관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그의 열정을 맘껏 느껴보기 바란다. 재미가 붙으면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어보도록 하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루에 한 두 페이지 씩 이라도.

김현택(문과대 교수, 생물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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