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연, <삼국유사>
내가 삼국유사의 내용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학년 교양과정이 끝나고 2학년 때의 국문학 개론과목을 통해 교재에 인용된 <삼국유사>의 내용 몇 대목을 접한 것이 삼국유사와의 최초의 만남이다. 고등학교 교재를 통해 책 이름만 알고 있던 고전의 내용을 최초로 접할 때 호기심이 발동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지적 욕구는 교재에 인용된 몇 대목으로는 만족할 수없었다. 나는 <삼국유사>의 전모를 알고 싶어 그 시절 대학생 주머니 사정으로는 좀 벅찬 값을 지불하고<삼국유사> 한 권을 샀다.  그 시절(1960년대 초)살 수 있는 <삼국유사>로는 최남선이 편찬한 <신정 삼국유사>와 이병도가 펴낸 <역주 삼국유사> 두 가지가 있었다. 앞의 것은 순전히 한문 원문만으로 되어 있고, 뒤의 것은 원문 다음에 역주가 붙어 있었다.

나는 뒤의 것을 샀다. 그러나 직역체의 뻣뻣한 번역문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아예 원문으로 읽었다. 나는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기 때문에 대학 때 <삼국유사> 정도는 충분히 읽을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경주 출신이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 대체로 경주 일원을 중심으로 작성되어 있어 평소에 보고, 밟고, 만지던 유적·유물이며 들은 이야기들을 책 속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묘사나 설명이 우리말에 비해선 간략하고 함축적이기 마련인 원문을 나는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힘이 돼후일 어떤 계기로 나는 <삼국유사>를 이병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병도의 번역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번역해 책으로 냈다. 그뿐이 아니라 그 뒤 나는 원문의 교감(校勘)까지 하여 또 책으로 낸 적이있다. 시쳇말로 <삼국유사> 마니아가 된 셈이다. 나의 전공 상 그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전공 상의 필요 이전에<삼국유사>에는 한국인의 심성을 사로잡는 매력 또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원적(始原的) 삶의 숲이요, 강(江)이다. 단순히 걸쳐 있는 시기가 고대(古代)라고 해서만이 시원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포괄하고 있는 내용과 질에 있어서 더욱 시원적이다. 상고에서부터 통일신라기까지의 신화·전설·신앙·민속·풍물·정칟제도·언어·예술…, 그리고 사유와 의식과 가치와 꿈과…, 이런 여러 범주에서 우리 민족의 우리 민족다운 것들이<삼국유사>에 모여 하나의 깊고 그윽한 숲, 또는 깊이를 요량할 수 없는 강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불교에 물든 뒤의 우리 민족의 삶의 기록이란 점에서 한계는 있지만, 불교적인 신앙이 촉매가 돼 오히려 민족의 고대적 삶의 총체가 고루 발현됐다는 이점이 있다.

<삼국유사>는설화의 보고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도 오늘날의 각 분야에 관련하여 총합적인 자료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순한 자료집으로 엮어진 책은 아니다. 일연이 당시 원나라 지배 아래에서 잊혀져 가는 민족의 시원적인 세계를 찾아 확인하고 이를 새롭게 이해하자는 것이었다. 곧 민족의 자주성을 확보하자는 기록 행위였다.<삼국유사>는 민족의 의미 깊은 위대한 드라마요, 서사시다.
백문이 불여일견,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동환 (문과대 교수,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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