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적으로 볼 때, 서울은 대단히 흥미로운 도시이다. 지난 30여 년간 서울만큼 압축성장을 한 도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렵다.

서울에는 응축된 시간의 켜가 존재한다. 아울러 다른 나라 대도시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다. 공기 오염이 심각하고 도시 관리에 대한 노력이 아직 부족하지만, 서울은 그런대로 아름다운 곳이다. 꽤나 높으면서도 아늑한 모습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도시를 우리가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좀 더 전문적인 눈으로 보면, 서울의 지리적 상황이, 그리고 현재 당면한 사회변화상황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하다.

서울의 자연환경은 독특하다. 산과 강, 특히 강은 세계 어느 도시에도 있지만 서울과 같이 드높은 산이 도시에 가깝게 접해 있으면서도, 한강과 같이 드넓은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도시는 드물다. 필자는 전 세계 50여 주요 도시를 돌아보았지만, 이런 곳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서울의 공간변화역사 또한 특이하다. 19세기까지 5백년여년 간, 15만 정도의 인구를 동일한 도시 영역 속에 꾸준히 유지했던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지난 40여년간 100만에서 1000만 인구의 대도시로 팽창한 도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다.

지난 1950년대에 미국의 가트먼(J.Gottmann)이라는 지리학자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미국 동부의 보스턴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축(자동차로 9시간 거리)은 연속적으로 도시화된 지역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1억 명의 인구 밀집 지역이므로, 거대도시권으로 불리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수도권은 수퍼메갈로폴리스(Super-Megalopolis)로 불리울 만 하다. 통근권(서울-평택은 55km)에 250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중심에 서울이 있다. 지난 40여년 압축성장의 결과다. 이러한 압축된 역사와 농축된 변화의 결과 서울에는 아직 전산업사회, 산업사회, 후기산업사회의 성격들이 병존하고 있기도 하다. 때론 사람들이 도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지체현상도 나타난다.

서울은 지리적으로도 특이하다. 독일통일 이후,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마지막 국가의 수도로 서울이 있다. DMZ에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으면서 성장과 번영을 이뤄낸 도시가 서울이다. 때문에 서울은 그동안 남쪽 지향적으로 성장해왔고, 아직도 그 정치적 긴장감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신행정수도 논의가 지금 한창이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1970년대에도, 1980년대에도 신행정수도 혹은 행정기능 분산논의는 있었다. 서울의 정치지리적 위치는 남북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계속 위협받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서울의 경제적 위치는 확고하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비행시간 2시간이내에는 인구 100만이상의 도시가 40여개가 있다. 도쿄, 오사카, 상하이, 베이징, 홍콩 등의 존재는 국제도시, 경제도시로서의 서울이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더구나 서울의 인구는 1990년대 말부터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다. 베이징, 서울, 도쿄를 잇는 베세토 라인(BeSeTo Line)이 주창되던 때가 엊그제임을 생각하면, 서울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서울이 갖고 있는 자연환경, 역사, 사회적 상황이 이처럼 흥미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살기에 좋은 도시인가라는 의문에는 긍정적인 답이 나오기 힘들다. 바로 이 점이 서울 도시계획의 문제점이다. 도시란 결국은 시민들이 편하게, 건강하게, 즐겁게, 애착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정주지여야 하는데 서울은 이러한 점에서 아직 크게 미흡하기만 하다.

서울은 600년 전에 계획도시로서 출발했다. 새로운 도시계획의 원칙아래 서울도성은 건설되었고, 인구는 적절히 유지됐다.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서울은 계속해서 건설 중이다. 그리고 아직도 계획 중이다. 계획과 건설의 키워드는 ‘더 빨리, 더 많이’였다. 서울은 커졌고 근사해졌지만, 도시는 올림픽경기의 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우리가 따낸 메달을 집계해 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환호한다. 서울에도 해마다 동양 최대 혹은 최고의 무엇인가가 건설되고 계획됐다. 지금도 거대한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최대와 최고에는 흥미를 잃었지만, 환경친화와 시민편의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커다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건설되고 계획 중이다.

도시란 결코 단순하지도 않고 그리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지극히 구상적으로 만들어진다. 도시를 계획하는 것은 정치, 경제, 법제도가 개입되어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공공과 민간이 서로의 이해를 저울질해가며 일을 진행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계획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을 숫자로만 파악해왔다. 이제는 인간이 감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늑한 곳을, 조금 작더라도 정겨운 곳을 원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서울의 도시계획이 지향할 점이 돼야 할 것이다.

                                       김세용 (건국대 교수 도시계획 및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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