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의 역사를 가진 나라마다 미학적 전통이 뚜렷하지 않은 곳은 드물 만큼 벽화는 세련미를 갖춘 미술의 총체적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의 화려하고 해학성 넘치는 표현과 소재의 다양성은 우리 미술의 우수성은 물론 전통 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인 자료이다.

지난 6월, 고구려 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나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내세워 고구려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고구려벽화에 대한 연구시각을 넓히고 다양한 관점에서 당시 고구려인들이 지녔던 정신세계와 함께 그들의 기술세계도 이해해야 하겠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복원돼있는 고구려무덤벽화 장천1호분에 나타나 있는 여래상은 현재 남아 전하는 불교회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림이며 고구려에서 불교 수용 초기에 여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추정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예불도> 왼쪽 부분에는 묘주부부가 연봉오리 모양의 꽃비가 가득 내리는 길을 시녀를 대동하고 멋쟁이 양산을 쓰고 산책을 다녀오는 모습이다. 5세기 초에 제작했으니 지금부터 1500년 전의 벽화로 대단히 시적이며 탁월한 디자인 감각이다.

이 묘주부부는 집에 모셔놓은 여래에게 예불을 드린다. 절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측면이나 얼굴은 정면으로 그려 전면의 얼굴모습을 볼 수 있게 미적으로 묘사했다. 예불자 위의 비천들은 연꽃잎을 뿌려 부처의 덕을 기리고 있다. 부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염을 지녔으며 이마 위에 호상(豪相)이 있으며 손바닥을 편 채로 왼손위에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얹은 자세인데 이는 석가가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첫 자세이다.

대좌 좌우에 호법사자를 표현했으며 불꽃무늬로 장식된 광배가 있고 그 위에 성스러운 나무가 자주색 띠무늬로 장식돼 있다. 예불도 왼쪽에는 남녀로 보이는 두 어린이가 한 연꽃에서 동시에 태어나고 있다. 내세 정토에서도 현세의 인연을 잇고 싶었던 것이 고구려인 부부의 소망이었다.

한편, 땅과 하늘을 받치는 신화 상 존재로 맨발인 역사(力士)들은 굽혀 버틴 무릎자세와 두 팔로 불교의 정토(淨土)를 받치고 있다.
                                                    진영선, 본교 미술학부 교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