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냄새는 난향처럼 널리 퍼져서, 위로는 신명이 음향하고, 아래로는 악취를 제거할 만하며, 이를 제대로 갖추어 가차를 요하지 않음을 말한다”
일찍이 코는 기를 통하는 구멍이라고 하여 후각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조선후기 실학자 최한기 선생의 말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좋은 냄새’가 바로 ‘향’이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냄새가 바로 향이며 향기인 것이다.
향은 식품과 화장품에 첨가될 때 그 의미가 각각 조금씩 달라진다. 향이 화장품에 쓰일 때는 ‘아름다움과 건강을 갖게 하는 냄새’라면 식품에 쓰일 때는 '맛을 포함하는 냄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향의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된다. 삼국유사 속 고조선에 대한 글에는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오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으로 묘향산은 예로부터 향기로운 나무가 많아 향산(香山)이라고도 불렸다. 우리 민족의 첫 근거지부터 우리는 향과 함께 한 것이다.
그 이후 향의 사용은 고구려의 쌍영총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이 벽화에는 소녀가 세 줄기의 향연이 피어오르는 향로를 머리에 이고 두 손으로 받친 장면이 있는데, 이는 고구려 시대에도 향이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고려시대로 넘어가면 향은 귀족 또는 궁중의 여인에게만 한정되어 사용됐다. 고려의 여인들은 비단으로 만든 향주머니인 향낭을 몸에 차고 다녔고, 그것이 많을수록 귀부인으로 여겨졌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향이 일반 민간인들에게까지 전달됐다. 조선시대 말 부녀자들의 생활 지침을 적은 책인 ‘규합총서’에는 향 만드는 법이 기록돼 있는데, 이는 부인네들이 쉽게 향을 만들어 썼음을 보여주는 문서인 것이다.
과거의 향과 관련된 유물들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태평양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향유병, 고려시대의 청자 향유병, 조선시대의 향낭 노리개 등이 전시돼 있다.

모든 산업의 발달이 취약했던 일제시대에는 박가분이나 동동구리무 등 최초의 화장품 산업이 시작됐으나 향 산업의 발전은 미미했다. 그 이후 1960년대에 미군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향수가 처음으로 보급됐으며, 김덕기(숙명여대 ·향장학과) 교수에 의하면 1970년대에 가서야 향수의 사용이 본격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 이전 우리에게 존재했던 향 문화는 향수라는 상품이 들어오면서 문화는 잃은 채 외국 상품만 남게 됐다. 이 모습은 젊은이들이 향의 의미는 모르고 외국 향수 브랜드에만 열광하는데서 드러난다. 이에 대해 갈리마드 조향스쿨의 정미순 원장은 “낮은 경제수준과 보이지 않는 것에는 소홀하고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국민적 성향이 향 문화의 형성과 향 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됐다”고 그 원인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제주도의 '제주'나 지리산의 '노고단' 등의 일부 향수를 제조하긴 했지만, 외국의 상품들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생활건강 한상길 팀장은 “지나치게 외국의 브랜드만 선호하는 풍조가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향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향에 관한 전문가를 양성 할 수 있는 교육기관과 향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부의 도움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나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의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순수하게 향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다. 초·중·고등교육 과정에서 시각, 청각과 관련된 색과 음악은 배우고 후각과 관련된 향은 소홀히 다뤄지다 보니 학생들은 삼원색과 계이름은 알아도 향은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한다. 음악산업과 미술산업이 발전하는 반면 향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 당연하다. 대학 교육에는 다행이 향을 배울 수 있는 전공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일부 대학에 마련돼 있는 향장학과에는 ‘향료학’과 같은 향을 가르치는 과목이 있을 뿐 순수하게 향에 관해서만 전공하는 학과는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향장학과가 마련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향에 관해 공부할 수 는 있지만, 전문적으로 향을 공부하기 위해선 외국 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과 두뇌 집약형 산업인 향 산업이 발전하기에는 매우 좋은 입지이다. 향 산업은 미래 지향적 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향의 분야가 식향, 생활용품향, 방향, 향수 등 그 범위가 넓다보니 발전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 특히 요즘 웰빙 열풍과 함께 인기를 얻고 있는 아로마테라피의 경우 10대 유망 산업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아로마테라피협회 오홍근 회장은 “삶의 질과 건강을 추구하는 경향이 아로마테라피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며 “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아로마테라피를 전문화 시키고 그 사용방법을 편리하게 만들어 앞으로 향 자체가 국민의 필수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로마테라피의 발전과 함께 향 산업의 발전 또한 기대가 된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한 연구과 투자, 전문가 양성을 한다면 향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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