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택
인문대 교수. 고고학

현존하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금동공예품 중의 하나로 평양의 청암리토성에서 출토됐다. 이 금동관은 북한이 국보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유물이며, 2002년 겨울 해방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고구려 고분은 일찍부터 도굴꾼에게 노출돼 있어 금동유물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문헌기록을 통해 고구려 사람들이 금은 장신구를 즐겨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 고구려전(高句麗傳)에도 ‘고구려의 정식의복은 모두 비단으로 수놓고 금은으로 장식하였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이다. 실제 고구려에서는 금과 은을 북위(北魏)와 왜(倭) 등 이웃나라에 보내기도 할 정도로 귀금속 공예품을 많이 생산했으며, 이는 고구려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금동관은 인동(忍冬)무늬를 맞새김한 테두리 위에 아홉 개의 불꽃무늬를 세워 장식했으며, 테두리의 양쪽에는 옷고름과 같은 모양의 드리개 장식을 두 개 늘어뜨렸다. 금동관 테두리의 인동무늬 위에는 꽃 모양 장식 7개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해 변화를 줬다. 또한 테두리와 드리개에는 윤곽을 따라 작은 연주문(連珠文)을 새겼으며, 특히 드리개 장식의 옷고름 모양 부분에는 매우 가는 선을 여러 번 그어 장식하는 등 정교한 세공기술을 발휘했다. 이 금동관은 크기가 작고 형태가 보살상의 머리에 장식된 보관(寶冠)과 같아서 원래는 보살상의 머리에 장식돼 있던 보관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힘찬 불꽃 모양에서 고구려 사람들의 힘과 기상을 엿볼 수 있으며,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고구려 금동공예 기술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금동관의 불꽃장식은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관식(冠飾)과 유사하며, 전체적인 의장에서 일본 법륭사(法隆寺)의 백제관음상(百濟觀音像)의 보관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어 고구려 금동공예술이 백제와 멀리 일본에까지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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