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금도서목록이 존재했던 시대. 그러나 그때에도 책은 있었다. 책은 얼마든지 출판될 수 있었다. 단, 정부가 규제하는 내용을 담지만 않는다면. 21세기인 오늘날 금서를 운운하면 핀잔 받기 십상이다.‘지금이 어떤 시댄데?’그러나 오늘날 언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분야가 있는 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역사는 여전히 그늘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출판계에 있어 몇 해 전부터 성역이라 불리는 ‘문학권력’담론이다. 문학권력이 언급될 때, 주로 거론되는 곳은 『창작과 비평사』(이하 창비)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와 같은 문학잡지사들이다. 사실 문학잡지사들이 학계나, 출판계에서 미치는 영향이란 상당하다. 심지어 그 출판사들이 지니고 있는‘고급지’, ‘당대 지식인들의 집합체’와 같은 이미지는 문학잡지를 신화화하고 있다는 한 몫 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이다. 

 

신화화된 문학권력이 자유비평을 차단
진정한 비평은 탈인간관계에서부터


 
문제는 이런 문학잡지사들이 이러한 신화화된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지식인들과의 밀착관계 즉, 문학계의 패거리문화를 자연스레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권력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주요 공격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맥관계다. 예를 들어 ‘창비-고은, 신경림, 현기영’,‘문지-황동규, 이청준, 이인성’식이다. 이러한 관계는 주요 작가의 책이 발행되는 출판사를 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표현의 자유 또한 온전할 수 없다. 아무리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가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혹은 몸담고 싶은 출판사의 이면에 대해서는 외면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 속에서 비판적인 비평이 이루어졌을 때, 당사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집단 내 소외감’이다. 

문학권력을 타파하고 표현의 자유를 되찾으며, 거리낌없는 비평의 장을 만드는 몫은 또다시 지식인들에게 고스란히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권성우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무수한 인연의 고리와 다양한 사회적 관계 망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에서 비평가는 그 관계로부터 자유로울수록, 고독할수록,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비평을 쓸 수 있으리라.’(『비평과 권력』‘책머리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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