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시에 문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순수예술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작년 12월 10일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문화콘텐츠산업발전을 위한 예술과 인문학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는 기업인, IT산업관련자, 문화예술인과 인문학자들의 관심과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문화산업이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미래산업이라는 견해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물질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진입한 지금, 그 핵심은 지식자원과 문화예술인 것이다. 문화상품의 개발은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국가이미지 제고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세계 문화산업은 대략 1조3천억 달러선. 한국의 문화산업은 15억 달러 규모로 세계시장의 1%정도 차지하고 있다. 아직 미미한 문화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그만큼 잠재된 가능성을 펼쳐 보일 여지는 보인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류’열풍은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하지만 지나치게 대중문화에 편중돼 드라마와 댄스음악이라는 한계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가 한류열풍에 들뜨는 것은 경제논리 때문”이라며 “문화산업 전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돈’이라는 공식을 수립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문화평론가 고길섶 씨의 말에서 보듯, 한류 열풍은 문화산업과 문화교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문화산업은 외식, 여행, 호텔, 문화강좌, 패션, 전통공예 및 다채로운 여가상품의 공급과 같은 문화·정서적 만족을 주는 산업부문에 관심을 쏟는 것으로 국가 내에서 뿐 아니라 국가 간 산업 및 무역구조의 일부를 차지한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권 간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물질·정신적 공감을 이루는 문화교류의 단면이자 응용인 셈. 순수예술은 물질을 산출하는 생산 방식보다 기호를 산출하는 생산 방식이 훨씬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상품에 요구하는 미학적 감성의 기본임은 물론, 진심으로 이해하고 고민을 나누는 문화 교류의 본질이자 바탕이다. 당장 돈벌이가 되는 대중문화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한류열풍 등이 순수예술을 기반으로 확대될 때 지속적인 문화교류와 진정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에서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어 수치적 접근이 어려운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정진수 교수(성균관대 예술학부)는 “예술이란 품질에 대해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예술인들이 경제적 자립도 유지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순수예술의 발전은 아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교양수준을 높여, 예술의 품질을 구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한다. 이어 기초연구소 확립과 자금 지원, 문화콘텐츠 데이터베이스(DB)화, 기초적 문화시설(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전시관 등)을 충분히 보급·관리하는 등 기본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2000년부터 3년 연속 문화예산을 전체 정부예산의 1%로 책정하는 등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산업 육성책과 더불어 기초문화기반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오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문화원형콘텐츠화사업’은 역사, 전통, 풍물, 생활, 전승, 예술, 지리지 등 다양한 분야의 우리나라 문화원형 자료를 집대성해 디지털리소스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응용콘텐츠로 개발, 우리 문화에 기초한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자하는 취지이다.


문화관광부 문화콘텐츠진흥과 행정사무관 용호성 씨는 “예를 들어 조선시대 검안기록이나 전쟁 관련 자료를 DB로 구축, 영화나 드라마, 게임산업에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라면서 “예술인들과 인문학자들의 연구가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문화 자체의 산업화’는 경계하지만 ‘문화와 산업의 접목’을 통해 순수예술과 문화산업의 상생과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특히, 오는 31일(금) 개막하는 2002 FIFA 월드컵은 세계인의 스포츠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세계와 함께 호흡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올림픽으로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렸다면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는 우리나라의 면면을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일시적으로 준비한 특별문화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는 것이 한번뿐인 월드컵의 또 다른 중요한 과제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