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경기도 교하면에서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에 이어 올해 5월 대전시 중구 목달동에서 미라가 발견됐다. 한 문중에서 남, 녀 각각 2구씩의 미라가 발굴됐으며 그 중 하나가 이번에 연구된 학봉 장군 미라이다. 후손에 의해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된 미라는 본교 김한겸(의과대 병리학과)교수 팀에 의해 연구 결과가 밝혀졌다.

썩지 않고 건조되어 원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인간이나 동물의 시체. 이것이 미라의 사전적 정의다.
미라에는 이집트 등지에서 방부제를 사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과 우연히 조성된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 등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번에 밝혀진 학봉 장군 미라는 천연적이라는 점에서 후자에 해당한다. 불멸에의 꿈을 시신 보존으로 이루려는 뜻이 담긴 인위적 미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는 한반도 지역의 독특한 매장 문화에서 기인한다.

김한겸 교수는 이에 대해 “특히 임진왜란 이전, 사대부들은 내관과 외관으로 나눠 이중으로 관을 썼고 바깥쪽에 석회를 둘렀다”고 밝힌다. 관은 매우 정밀하게 짜여졌으며 25~30cm에 이르는 두꺼운 회벽이 굳으면서 옷가지로 가득 차 있는 관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산소가 필요한 호기성 세균은 자연스레 박멸되고 혐기성 세균 또한 시신에서 발생한 산성 물질로 인해 자라지 못해 무균 상태로 유지되면서 부패를 막았다. 이러한 분석은 지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연구에서 가스 확인과 사진촬영을 통해 본교 연구팀에서 밝혀낸 것이다.

이처럼 국내 미라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던 모자 미라에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김 교수 외 연구팀은 부검 없이 내시경 및 복강경· 흉강경, 치아 검사를 바탕으로 600년 전 미라의 질병과 사인(死因)을 알아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미라는 장기가 오그라들어 있는 한국의 일반적 미라와 달리 정상적인 폐의 크기가 유지됐다는 점에서 폐 질환을 갖고 있다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며 “폐기관지내시경을 실시한 결과 좌측 기관지가 우측에 비해 좁아 추정에 힘을 더욱 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상인의 경우라면 좌측 기관지가 우측보다 넓어야 한다.

이번 연구에서 또한 주목할 만한 성과는 ‘가상발캄의 성공이다. MDCT(Multi Detecotr CT)를 사용해 3차원 영상으로 치아를 재현한 이 기술을 통해 이의 훼손을 최소화 시킬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치아의 마모도를 알 수 있어 미라의 사망 당시 연령을 41~44세로 추측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한편, 검출물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망 시기를 보여주는 꽃가루 분석이었다. 특히 이번 미라에서 나온 꽃가루는 사망 원인까지 알려주는 열쇠가 됐다. 꽃가루 분석에 참여했던 김기중(생명과학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5~6가지의 꽃가루 중 식도, 위, 장 부위에서 애기부들 꽃가루가 다량 검출됐다”며 “개봉 당시 관 내부에 들어있던 공기 중의 꽃가루에는 애기부들 꽃가루가 없었고, 사대부 가문의 3개월장 풍습과 미라 생성 조건을 고려할 때 사망 시기가 애기부들 꽃가루가 생기는 5월경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이를 일부러 먹었다고 결론짓게 됐다”고 말했다. 애기부들은 주로 고여 있는 물가에 서식하는 식물이다. 애기부들의 꽃가루는 ‘포항’이라는 한약재로서 각혈, 토혈 등에 대한 지혈용으로 사용되며, 현재도 한방에서 쓰고 있는 약재이다. 이런 약재를 먹었다는 것은 폐 관련 질환을 앓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연구팀은 미라가 생전에 반복적이고 다량의 폐출혈을 유발하는 기관지 확장증을 앓았으며, 기관지에서 꽃가루가 다량 검출된 것으로 보아 약재로 먹던 꽃가루가 기관지에 흡입돼 폐색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600년 전 미라의 비밀은 이렇게 풀려가고 있다. 공개된 미라 앞에서, 그 후손인 우리들에게 칠레의 한 미라 연구가의 말은 진중하게 다가온다. “미라들은 사실상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다가 죽었고, 오늘날의 우리처럼 먹고, 사랑하고, 고통받았다. 우리는 표본이 아니라 인간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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