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서울공연예술제 공식참가 경연 작으로 극단 맥토가 내놓은 「수릉」은 고려시대 공민왕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상을 떠난 노국공주를 못 잊어 정치는 신돈이라는 승려에게 맡겨 두고 술로 그림으로 현실과 담을 쌓았다는 공민왕,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간단한 정보를 작품은 좀 더 구체화한다.


‘죽기 전 미리 지어놓은 임시가묘’, 수릉(壽陵)을 공민왕의 삶과 상징적으로 연계시키고, 거기다 신돈의 야망과 노국공주의 원혼 그리고 말년에 용모가 출중한 청년들만 모아서 그의 시중을 들게 했다는 ‘자제위’등 이들과 공민왕 사이의 심리적 갈등은 극적 구조가 된다.

그러나 플롯은 뭔가 불안하다. 왕의 전폭적인 신임으로 세도를 부리던 신돈이 왕의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내면을 왕래하며 보여준 그들간 긴박한 갈등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다가 결국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신돈의 이야기가 끝나면, 연극은 또다시 약간의 복선만 깔아두었던 원귀 노국공주에게 바톤을 넘겨 임신한 아이에 대한 왕의 의심이 공주를 죽음으로 몰았었다는 이야기로, 그러다가 자제위 소속 홍륜과 왕비 혜빈의 임신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왕의 의혹과 광기, 그래서 홍륜이 왕을 죽이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왕 못지 않게 물리적 시간의 할당량이 컸던 신돈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그 둘간의 팽팽한 긴장은 초반에서 중반을 잇는 작품의 중심행동이었다. 따라서 초반부터 비중을 크게 둔 왕과 신돈의 관계, 그에 따른 대신들과의 갈등으로 혹은 그와 연계된 이야기로 극이 전개되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에너지의 집약과 분배를 추스르지 못한 채 작품은 갑작스레 공민왕 삶의 궤적으로 이동해버리고 왕의 내면을 설명하려든다. 결국, 상하위 플롯이 갑자기 무뎌져 낙후한 갈등만이 있는 뒷이야기들 때문에 연극 전체는 힘을 잃게 되고, 대중적 재미와 끝까지 타협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들조차 무의미하게 한다.

무대 후면을 열어 깊이를 강조하려 한 무대는, 그 깊은 무대를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그어진 하얀 사각의 선이 배우에로의 시선집중을 분산시키는데 오히려 그 역할을 다한다. 또한 무대 구역에 대한 관객과의 컨벤션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아 무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물론 12지신상이 그려진 플랫들이 무덤의 폐쇄된 공간을 잘 표현한 점이나 오케스트라 피트 악사들의 즉석연주음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전혀 맞짱 뜰 준비가 안된 무심한 관객들 앞에서 정공법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요하는 긴 이야기와 연등제때 위로부터 내려온 질서정연한 연등들처럼 그저 정돈 잘 된 무대는, 매력발산을 봉쇄 당한 채 무게가 무게로만 느껴지고 해석의 기쁨이나 저 깊은 감정선을 찔러대진 못하여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듯하다.


함몰된 구조 때문에 파생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많아 보이고 모두 다 ‘중요해 보이는’ 부담스런 대사들과, 나아가 전반적으로 딱딱하고 상상력이 부실한 무대 운용으로 인해 “어머니 속 깊은 자궁”일수도 있고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환기할 수도 있었던 수릉의, 그 정적과 아우성이 요동치는 성찰의 공간을 관객은 그만 놓치고 만다. 비록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의 공연이지만 관객의 엉덩이를 그대로 객석에 붙여 놓게 만드는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관통하는 중심행동(spine of action)’에 달려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김숙현(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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