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부문에 출품된 <동백꽃 프로젝트>. 독립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이송희일 감독과 최진성 감독, 그리고 첫 단편을 연출하는 소준문 감독이 각각 동백꽃과 섬을 둘러싼 세 가지 동성애 이야기 <김추자>, <동백아가씨>, <떠다니는 섬>을 엮었다. 한마디로 퀴어 옴니버스 영화다.

‘퀴어(queer)’의 사전적 의미는 ‘괴상한, 이상한, 기묘한’이며 속어로 동성애자를 뜻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동성애 운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동성애 운동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된 단어이다. ‘게이(gay)’가 남녀 동성애자만을 뜻한다면 ‘퀴어’는 남녀 동성애자를 포함해 이성애 제도에서 소외된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다.

지난 6월 17일부터 30일까지 종로, 광화문, 홍대 일대에서는 ‘제5회 퀴어문화축제 - 무지개2004’가 성황리에 열렸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란 슬로건을 내 걸고 퍼레이드, 전시회, 댄스파티,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특히 개막행사 퍼레이드에는 300여 명의 동성애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빛깔의 천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신나는 댄스음악에 맞춰 여장을 하거나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핫팬츠를 입은 파격적인 차림의 게이들이 멋진 퍼포먼스로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대학생 김 모씨는 “지난 해부터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과 이 축제를 찾았다”며 “항상 뭔가에 억눌렸지만 이 날 만큼은 큰 짐을 벗어 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예년보다 외부단체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한 것을 비롯해 여성운동연합, 영화인회의, 문화연대 등 각계각층에서 자발적으로 행사 참석을 희망해 조금씩 달라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의식을 보여줬다.

퀴어조직위원회 홍기훈 조직위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당당해  지

   
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오해 등을 없애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소준문 사무국장은 “성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퀴어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고 전했다. 현재 그들은 내년 5월 말 쯤에 열릴 ‘제6회 퀴어문화축제 - 무지개2005’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부터 케이블TV 영화채널 ‘Home CGV’에서는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라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마을에 사는 게이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 갈등을 유쾌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밤 12시, 1시라는 늦은 시간에 방영되지만, 매회 1%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케이블 TV의 최고 시청률이 1.315%(TNS기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높은 수치다. 다음(Daum)의 대표적인 ‘퀴어 애즈 포크’동호회(cafe.daum.net/qaf)의 회원수는 국내방영 후 2개월여 간 약 2만 여명이 증가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기존의 시리즈에서 보기 어려웠던 퀴어들의 삶과 사랑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젊은 세대부터 퀴어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 회도 빠짐없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홍 조직위원회장은 “미국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와는 다소 다르지만 성적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퀴어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평가한다. Home CGV의 김수영 PD는 “회를 거듭할수록 매니아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케이블 TV 영화채널 캐치온은 게이가 출연하는 이색 프로그램 <퀴어 아이>를 지난 4월 14일부터 방영해 왔다. 이것은 미국 NBC가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인 브라보TV에서 지난 해 7월에 처음 선보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 사이에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 인기인 요즘, 인테리어 디자이너, 패션 스타일리스트, 뷰티 전문가, 음식 감정가, 문화 전문가 등 5명의 재능 있는 게이들이 출연해 평범한 남성(이성애자)의 스타일을 바꿔주는 과정을 담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은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몸매관리 등 외모를 가꾸는데 관심이 많고, 내면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도시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다. 지난달 19일 막을 내렸고 오는 12월 앙코르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 56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리얼리티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지난 4일(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아시아의 젊은 영웅20인’에 국내 배우 홍석천 씨의 이름이 올랐다. <타임> 아시아판은 “2000년 커밍아웃한 뒤 활발한 활동으로 동성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시선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며 홍 씨를 ‘젊은영웅’으로 뽑은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그동안 성적소수자에게 느껴왔던 선입견들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큰 상처가 된다. 오늘도 퀴어들은 이렇게 외친다.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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