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훈련원에는 생각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미얀마를 거쳐 이 곳까지 왔다는 그녀는 잠시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냐는 말과 함께 태국 가나안 훈련원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기관장을 제외하고는 오랜만에 보는 한국인 손님이기에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소의 나보다 살갑게 이야기를 붙였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훈련원일들에 대한 이야기나 일상적인 대화들만 간간히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훈련원의 일과를 돌보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뿐이었다. 그녀가 하는 말의 마디가 짧을수록 그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문득 밖에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싶어 훈련원의 주위를 거닐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훈련원 안의 대나무 집 마루에 걸터앉아있는 그녀를 봤다. 훈련원 건물에는 전기가 들어오지만, 대나무 집 근처의 경우에는 가로등과 같은 시설이 없어 한밤중에는 사람의 윤곽만 겨우 보일 뿐, 그 사람의 표정을 읽기에는 빛이 너무도 부족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어둠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그녀의 말문을 트이게 해주기에는 적당한 배경이 됐는지, 내가 그녀가 있는 곳에 다가가 앉자 말이 없던 그녀는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진짜 이름 대신, 태국여행을 다니면서 사귄 친구로부터 받은 ‘우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그녀는 나에게 어떤 생각으로 자원 봉사를 오게 됐냐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외 자원 봉사를 결심하면서, 스스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그리고 좀 더 분명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기 위해 항상 스스로에게 던져오던 그 질문. 그리고 나의 다짐을 사람들에게 밝힌 뒤에 항상 받게 되던 그 질문. 나는 이미 봉사활동을 하러 온 지역에서 또 다시 내가 이 자리, 그리고 이 시간에 낯선 땅을 밟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너무도 다양한 이유들이 교차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우마’에게 단박에 설명하기에는 참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타지를 향한 내 발걸음의 이유들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이유들을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키워드는 바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 틈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더욱 넓히고 싶어 이 곳에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어떤 이유로 여행을 하고 이 곳까지 온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도 나처럼 정리를 하고 뱉어내야 할 말들이었는지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말을 시작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을 털어버리고 싶어 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돕고 낮은 곳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부대끼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여행 도중 만난 고산족들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의 처우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 할머니를 통해 그들을 위한 도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단순히 자신을 위해 시작한 여행을 타인을 위한 걸음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리고 찾아오게 된 곳이 이 곳 훈련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훈련원에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길을 떠나고도 다른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가서 그 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구체적인 말은 없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한국에서의 삶을 떨쳐버리고 싶게끔한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더욱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접고 말았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 나는 그녀가 이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앞으로 또 다른 도움의 손길을 펼칠 계획을 마련하는데 있어 그 중심에 ‘자기 자신’ 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여행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그녀를 보니, ‘새로운 경험’ 이라는 단어를 봉사활동의 이유로 들었던 내가 ‘도움’ 과 ‘봉사’ 라는 이름표를 걸고는 있지만, 사실 나의 ‘봉사’ 라는 것도 한꺼풀 벗기고 생각해보면 결국은 ‘나 자신’ 이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지워나가기 위해 이 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내 깜냥의 지식들과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나눠 줘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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