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G. Deleuze, 1925~1995)는 1925년 1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 카르노 중?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1942년부터 고등사범학교의 입학을 준비하나 실패한다. 소르본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사르트르에 심취했고 1947년 대학을 졸업하며 흄에 관한 논문을 제출한다. 이 논문은 1953년에 <경험론과 주관성>이란 제목으로 출간된다. 졸업 후, 그는 1948년에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지식인 모임에 드나들며 자크 라깡, 장 폴락 등을 알게 된다. 모교인 소르본대 철학과 조교(1957년), 국립과학연구소의 연구원(1960~1964) 등을 거쳤다.

들뢰즈에게 1968년은 특별한 해다. ‘68혁명’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최초이자 기념비적인 저서로 가타리와 함께 쓴 <앙띠 오이디푸스>(1972)가 있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이란 책은 <의미의 논리>(1969년)와 함께 그의 주 저서로 꼽히는데, 미셸 푸코는 이를 두고 ‘벼락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들뢰즈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세기는 언젠가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1969년에 그는 정신분석 의사이며 공산주의자였던 가타리와 ‘정신분석과 무의식’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공유한다. 그들의 공동저서로는 <앙띠 오이디푸스>,<카프카,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뿌리줄기>, <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자크 데리다, 피에르 부르디외, 미셀 푸코 등이 모두 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선택된 지식 엘리트였던 것에 비해 그는 평범한 소르본 출신이었다. 그리고 여러 지식인들이 프랑스 공산당의 이론가로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반면에 그는 평범한 좌익활동에 만족했다. 그럼에도 그가 프랑스 철학의 최고봉에 오른 것은 그의 사상이 깊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반역의 철학자, 반 헤겔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언제나 철학적 사조나 학파의 바깥을 맴돌았고, 철저히 자유인이고자 했다. 흄에서 시작해 니체, 칸트, 프루스트, 카프카, 스피노자 등의 연구에 바친 초기 저작에서 마지막 저서인<비평과 임상의학>(1993)에 이르기까지 철학 외에 문학, 미술, 연극 등 예술 전반에 관해 생애 3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1995년, 그해 11월 4일에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함으로써 그는 칠십 여년의 생을 마친다. 그의 죽음은 프랑스 인문학계의 큰 손실이며,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억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