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맹
 
서울 동대문구 이문 3동에 사는 권복숙(64)씨. 글을 모르는 그녀는 외출하는 것을 꺼린다. 특히, 글을 써야하는 관공서나 은행 등의 공공기관에 혼자 가는 것은 매우 벅차다. 자신을 바보처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더욱 움츠리게 했다.

1947년 경주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을 때는 남자들에게만 공부를 시키고 여자들에게는 단순한 집안 일을 가르치는 사회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녀는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살면서 그냥 감수하기로 했던 불편함은 어느새 어려움으로 변했다. 그 후 60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지만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글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에 기쁘다고 한다. 그녀는“예전에는‘검은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라는 것 밖에 몰랐다”며 “지금은 뜻을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글 교육을 받은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한글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요즘은 스스로 관공서나 은행을 다닌다. 그러나 글을 알지 못할 때는 못 겪을 일도 많이 겪었다. 그 당시 은행에서 청구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옆 사람이 자신의 작성 속도가 느리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핀잔을 주었다. 그런 행동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혹시 자신이 문맹자라는 것이 들킬까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해서 밖으로 다니지 못했던 일 등은 흔한 일이었으며 자녀들을 공부시킬 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어서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그녀는 한글을 다 깨우치면 신문과 책을 많이 읽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부문맹

현재 차로 된 간이 식당을 운영하는 박성자(44) 씨. 1959년 8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의 집은 당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가난했다. 그 때문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였지만 가정형편 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다. 그 후, 14세가 되던 지난 1962년,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그러나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어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던 그녀는 글을 몰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녀는 달력을 볼 줄 몰라 월급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었고 또한, 월급이 제대로 나왔는지 알지 못하고 지내야만 했다. 글을 몰라 힘들었던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차로 된 간이 식당 허가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다녔지만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지 못해 담당 직원에게 자신의 세세한 정보를 옆에서 이야기 해주면서 서류를 작성했던 경험은 그녀가 글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그녀는 푸른 시민연대에서 한글 수업을 받은지 1년 8개월 째다. 지금은 수업으로 한글을 많이 배웠지만, 전혀 모르던 당시에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살짝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은 관공서나 은행을 혼자 다닌다. 아직까지 서류 작성이 조금 서툴긴 하지만 이제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문맹

일반적으로는‘설마 10대 문맹자도 있어?’ 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사실 이말은 문맹자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가 부족함을 반증하는 말이다.
박종식(가명·17세) 군은 보기 드문 10대 문맹자다. 박 군은 현재 신설동의 K학원에서 운영하는 무료 한글 교실에 다니고 있다.

박 군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게 된 원인은 그의 가정에 있다. 박 군의 가정은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박 군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당연히 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박 군이 글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은 인터넷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일반화 되어있는 인터넷사용을 자신을 할 줄 몰라 소외된 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미지 파일이 많긴 하지만 텍스트 중심인 인터넷은 박 군에겐 다가갈 수 없는 세계에 불과했다.

박 군은 “친구들이 인터넷 동호회나 채팅, 재미있는 게임을 이야기 할 때마다 심한 소외감을 느꼈다”며 “글을 모르는 사람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원에서 무료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장기남 강사는 “무료 한글 교실을 운영한지 5년 여가 됐지만 아직도 10대 문맹자들이 계속해서 학원을 찾고 있다”며 “문맹률이 낮은 사회다 보니 오히려 문맹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생활의 어려움이 엄청 크다”고 밝혔다.
 
장애인문맹

전영자(가명·37) 씨는 뇌의 혈액순환장애에 의하여 일어나는 급격한 의식장애와 운동마비를 수반하는 증후군인 뇌졸중을 앓고 있는 장애자이다. 그녀는 뇌졸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뇌졸중으로 인한 장애 외에 한글을 읽고 쓰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녀는 한글을 배우기 전까지 대인 기피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몸의 이상으로 생긴 병이 아니라 글을 몰라 생긴 마음의 병이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고 심지어 가족을 보는 것도 맘에 걸렸다. 특히, 장애자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측은한 눈초리도 싫었을 뿐만 아니라 혹시 자신이 문맹자라는 것이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지 34년째인 1999년 그녀는 자신이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이유인 문맹이라는 짐을 떨쳐버리기로 결심했다. 짐을 떨쳐버리기 위해 현재까지 M 교육원에서 3년 째 한글을 배우고 있다. 중간에 건강상의 문제로 공부를 그만둘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를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상태이다. 그녀는 아직까지 한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한글을 다 깨우친 후에는 영어와 컴퓨터를 공부하고 대학까지 진학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