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술원 외국 회원 된 다음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시하는 인도 사람도 3명이나 있는데 우리나라는 나 전에 아무도 없었다. 창피하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국제 학술계는 물리, 화학 쪽은 우주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공업은 전자 기술이 대세이다. 아마 10년 내로 핸드폰만한 컴퓨터가 카메라, pc, 책 등을 모두 포함할 수 있게 될 거다. 또 Bio 테크도 유망하다. 환경오염 방지나 에너지 산업에 미생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나노 테크도 발전할 것이다.
 
△미국 유학 후에는 쭉 한국에서만 연구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MIT, 코넬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초청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나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었기에 가지 않았다. 한국학자가 한국에서 일으킨 업적을 가지고 외국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한국인으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셨습니다. 굳이 바이러스 이름을 본인의 이름이 아닌 ‘한탄’이라고 지으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주변사람들이 아호를 한탄이라고까지 지어주셨다는데.
-그 이름 가지고 국제 학회지에 등록할 때까지 4년 동안 고민했다. 보통 본인 이름으로 많이 기념하는데, 내 이름 석자보다는 대한민국을 알릴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 하는 애국적인 마음으로 대한민국에만 있는 한탄강의 이름을 땄다. 또 한탄강이 바이러스의 발견지이기도 했고. 또 6․25를 겪은 나는 한탄강을 넘어왔다. 내게 있어 한탄강은 자유의 경계선이고 통일 되지 않은 표지이다. 한국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발표했더니 사람들이 이게 한국의 강이름인지를 모르길래 다음에 발견한 바이러스는 아예 서울 바이러스라고 이름 지었다. 내가 아호가 원래 小友라고 있는데 친구들이 바이러스 발견 후 아호라도 한탄으로 해야지 이호왕이라는 이름에 보충이 된다고 지어줬다. 
 
△한탄바이러스 발견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 당시 유행성 출혈열으로 유엔군과 한국군 모두 많이 죽었다. 조사를 하다가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면역항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바로 이 면역항체를 만들어낸 항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접 형강 항체법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해 들줄쥐의 폐장에서 항원을 찾아냈다. 
 
△한탄바이러스 발견 시 어떻게 다른 학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폐장 조직을 검사하게 되셨는지요.
-이런 경우를 보고 바로 “행운의 여신은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연구 중 항원을 찾지 못했었는데 모르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연구 성과라고 책을 보내왔다. 그 책에서는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이 쥐의 폐장에 생기는 곰팡이라고 했다. 곰팡이는 아니라고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냥 엉터리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른 부분은 다 검사를 해봤는데 폐는 검사 안 해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검사해 본 결과 폐장속에 우글우글하는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만일 내가 기본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었더라면 모르는 사람이 아이디어가 되는 이 자료를 보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구 당시 어려운 점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으셨을텐데.
-많다. 미국에서 연구비를 받고 연구를 진행했는데 5-6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렸다. 약을 먹고 낫기는 했지만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째는 표본 채취하던 연구원이 유행성 출열열에 걸린 것이다. 8사람이 병에 걸렸고, 연구실 문은 거의 닫은 상태였다. 다행히 한 사람도 죽지는 않았다. 세 번째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기뻤던 순간은 바이러스를 발견한 그 순간보다 미국 측에서 연구비를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 전날 꿈을 꿨는데, 꿈에서 화산이 터지고 막 그러더라. 아내도 똑같은 꿈을 꿨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정복은 현대 과학의 8대 과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장 작고 단순한 생명체인 바이러스가 어떻게 이렇게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의 많은 병이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바이러스를 해결하려면 예방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백신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위협적이다. 바이러스는 자꾸 변종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바이러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바이러스를 완전히 치료하려면 계속 변하는 바이러스를 따라가야 한다. 앞으로 적어도 20여년동안은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비록 의대를 졸업하셨지만, 일생을 연구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최근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대는 이공계로 안치나? 안 친다면, 나는 의대를 나왔지만, 이공계를 가서도 나만큼 성공하면 된다. 그런데 이공계 나와서 잘 먹고 잘 살기 힘들다. 바로 이게 심각한 문제이다. 21세기는 기술 경쟁의 시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공계를 기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공계 나와서 잘 살 가능성, 대우 받을 가능성이 없으니까 다들 피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한다. 군대 특례 같은걸 주겠다고 하는데, 그럼 여자는 어떻게 하나. 이공계 장학금 제도 등도 좋은 보장 제도이다. 열심히 하면 인센티브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어떤 가치든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입니다. 혹시 이런 사회 현상이 일부 기초학문의 부실화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돈만 보고 달려간다면 그것은 물질 만능주의 사회를 만들게 된다. 창조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은 돈 걱정이 없어야 하는데 제도적인 뒷받침이 안 되니까 자꾸 기초학문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정치 입문의 권유를 받으셨을 법도 합니다.
-받았으나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이제 직접적인 연구는 당분간 쉴 생각이다. 여생을 좀 편하게 보내고 싶다. 대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것이다. 내가 여기저기서 받은 상금으로 한탄재단을 만들었다. 한탄상을 제정, 매년 천만원씩 지원할 생각이다. 있는 범위 내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다.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
우리 집 가훈 비슷한 건데,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자”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또 젊은 후배 과학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첫 번째, original idea가 있어야 한다. 여러 책을 읽고 세상을 접하고 깊이 들어가 보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예를 들어 외국의 에이즈 연구자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렵다. 한 평생 에이즈만 연구하는 사람 엄청나게 많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특한 idea 로 경쟁해야 한다. 두 번째, 연구비를 얻어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연구 계획 잘 세우고 노력해야만 한다. 세 번째로 영어다. 이제 국제화 사회이다. 영어는 필수다.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자 중 영어로 논문 못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래서는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네 번째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제 독불장군의 시대는 지났다. 다른 사람들과 잘 협조할 수 있는 능력, 영도자로써의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에 대해 100%, 아니 150% 노력하라. 나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대학원 시절에 유학생으로 선발됐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저놈 됐다”라고 할 때까지 빠져들어서 열심히 하면 무언가 이뤄진다. 학생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일, 즉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야심이야 가질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주어진 일인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기회는 그 사람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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