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경제개혁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북한은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한지 3개월이 안 돼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함으로써 경제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기본법 발표에 이어 외국인의 행정장관 임명은 금번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가 지난 91년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선포 당시와는 상당히 상이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이 특구법을 제정한 핵심 이유 중의 하나는 외자유치다. 경제관리개선조치는 가격과 임금 상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물자의 공급이 증가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은 홍콩이 중국  개방초기에 외자도입의 공급기지 역할을 수행한 사례를 들어 자본유입의 배후지로서 신의주를 선정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병존시키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성격의 신의주 특구가 수령제 정권 유지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경제회복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이 시급한 과제다.

  한편 신의주 경제특구는 남한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미국 주변국들과 다양한 측면에서 연계를 가질 수 있다. 남측으로서는 ‘신의주가 경제협력의 대상지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경제적 관점과 ‘특구 지정이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정치적 관점이 관전 포인트다. 섬유, 신발 등 고임금과 높은 토지 비용에 시달리는 한국 제조업으로서는 투자보장협정 체결 등 투자 여건만 조성되면 북측을 투자 적지로 숙고하고 있다. 남측기업으로서는 신의주가 평양이나 개성보다는 입지 여건이 우월하지 않지만 북측이 기본법 내용대로만 특구를 개발한다면 남측 기업으로서는 투자를 검토할 수 있다. 물론 나진·선봉 특구 당시 투자액이 묶여 어려움을 경험한 남측기업들로서는 당분간 관망자세를 취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불안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북측과 경협추진위에서 합의한 4대 보장협정의 조속한 체결 등 기업활동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신의주 특구의 성공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기여할 것이다. 동북아는 핵사찰 여부 등으로 2003년 위기설이 가시지 않고 있는 지역이다. 북한정권은 신의주 특구 건설과정에서 외국의 지원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경제 제재 해제는 특구 참여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생산품의 판로 확대에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금번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 등 북미관계 개선은 특구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변수이다. 또한 일본 자본의 신속한 유입도 특구 성공에 필요한 요인이다. 북일 수교협상 진행 경과에 따라 배상금 명목으로 일본 자본이 북측에 유입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금보다는 현물을 중심으로 대북투자를 진행하여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기업들의 도약을 지원할 것이다. 이외에 화교자본과 EU 기업들의 투자는 특구의 목표달성 기간을 단축시켜 줄 것이다.

이 특구 지정은 북한으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이기는 하나 국제자본 입장에서는 아직도 저울질해야 할 사항이 많다. 투자회수 가능성, 적정임금의 책정, 창의적인 노동력, 사회간접자본의 구축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투자가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나진·선봉에서 입증된 바 있다. 사회주의 경제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체제 유지와 경제적 효율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마스터플랜의 수립과 일정 혼란을 감내할 정권 지도부의 혜안이 필요하다. 비자 발급여부를 둘러싸고 야기되는 혼선 등은 사회주의 개혁 초기에 불가피한 현상이다. 개혁에 대한 지도부의 ‘말씀’이 중간관료들에게 체화(體貨)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과 알력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신의주 주변 군부의 반발로 무비자 입국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양상의 일환이다. 그러나 북한은 파격적인 법을 어렵게 내놓은 만큼 성과를 거두기 위한 세부 각론을 마련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북측이 나진·선봉의 당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 ‘특구지정→홍보(PR)→투자설명회’ 등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2002년 가을 한반도는 20세기초 열강의 각축을 연상시키고 있다. 남북한의 국민과 지도자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민족의 존립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심사숙고하여야 할 시점이다. 북측은 개혁·개방 노선을 본격화하여 개방 의지에 대한 외부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반면 남측은 북측의 조치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 이같은 남북한의 적극적인 대응노력은 통일비용 절감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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