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석학과의 대화(2) -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세계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로는 부르디외, 푸코, 하버마스 순이라고 한다. 당연한 이유겠지만 부르디외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그의 독창성과 비판력 때문일 것이다. 부르디외 사회이론의 핵심은 한 마디로 반성적(성찰적) 성격에 있다. 부르디외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일상생활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했고, 다양한 이론적 전망의 주어진 전통, 즉 이론적 범주와 이론적 실천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했다. 부르디외에게 진정한 사회과학의 실천이란 그 사회과학 자체에 대한 반성적 회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사회학의 사회학’ 혹은 ‘반성적 사회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과학세계(과학의 장)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징투쟁의 제약으로부터 사회과학자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정상과학’ 혹은 ‘지배적 관행’이 가져올 수 있는 오류로부터 반성적으로 탈피하여 이론의 현실적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반성적 사회학은 어떻게 유래했는가? 부르디외 사회이론은 맑스와 베버, 뒤르껭 등 고전은 물론이고, 현상학(훗설과 메를로 퐁티), 언어학(소쉬르), 구조주의(레비 스트로스, 알튀세, 푸코) 등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한 전망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의 사회이론의 방법론적 목표는 계급과 계층을 넘어, 주관과 객관을 넘어, 그리고 구조와 행위를 넘어 새로운 지평에서 통합하려는 것으로, 우선 기존 학문의 전통적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론적 단절’과 자신의 이론에 대한 부단한 인식론적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반성적 사회학으로 부르디외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사회의 다양한 재생산영역에 비판적 분석을 가하고자 함이다. 문학의 재생산에서부터, 권력과 계급의 재생산, 교육의 재생산, 문화의 재생산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다양한 장의 재생산 기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불평등과 왜곡된 성격에 대해 가감없이 비판하고자 한다. 여기서 비판은  사회구조 속의 갈등에서 상징투쟁과 상징폭력을 통한 권력-지배의 기제와 계급차별화의 재생산적 구조가 폭로된다는 의미에서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은 사회비판적이기에 앞서 먼저 객관적이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철저한 객관적 연구는 궁극적으로 그 사회질서의 권력지배의 재생산기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지배집단 혹은 지배계급에 대해 이성적으로 도전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객관적 연구의 이성적 도전은 사회비판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부르디외의 핵심 이론 및 방법론은 무엇인가? 부르디외의 사회비판이론은 사회학자로서의 자기반성적인 인식론적 비판에서 시작하여 사회구조와 행위를 통합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직관성과 객관성, 이론과 실천, 구조와 행위를 통합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이론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부르디외는 체험의 즉각성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주관주의적 직관주의와, 규칙적 관계를 세우고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고 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데 국한하는 객관주의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아비튀스’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아비튀스 개념은 행위와 구조에 관한 일반적 질문들, 즉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규칙적인 면과 변화가능한 면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회구조가 기계적으로 개인행위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행위의 형식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해 설명해준다. 부르디외는 사회이론의 쟁점이었던 구조와 행위, 이론과 실천의 통합문제의 해결에 하나의 대안을 제공하는데, 구조와 행위를 통합시킨 아비튀스 개념은 구조 속에서 행위와 실천이 생성되고 행위와 실천 속에서 구조가 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향들의 체계로서 아비튀스는 교육에 의한 지식, 취향 및 생활양식 등이 계급과 사회적 위치, 다양한 자본의 배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내면화된 것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아비튀스 개념은 나아가 계급구조와 계급화 행위를 통합시켜 상징적 투쟁으로서 계급화 돼 가는 과정, 즉 사회계급의 투쟁과 사회구조의 재생산 과정을 설명해준다. 상이한 아비튀스는 행위자와 제도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발생시킨다. 부르디외는 개인들과 집단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대립적인 투쟁의 게임으로 보고, 계급화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속에서 상징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자들의 경쟁과 대립의 상징적 투쟁과정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부르디외의 비판사회이론의 강조점은 사회구조가 어떻게 동태적으로 재생산되는가의 과정에 있다. 결국 사회질서란 정당화된 상징권력의 지배를 통해 유지된다. 모든 위계화된 상징질서는 지배계급의 기존질서에 대한 오인의 체계이고, 지배계급은 이러한 오인기제를 통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시킨다. 학교제도는 이러한 기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그렇다면 부르디외가 남긴 성과는 무엇인가? 부르디외는 산업사회의 심각한 변용(탈산업화, 탈계급화, 탈구조화)이라는 상황 속에서 계급논의를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차원, 즉 문화적 분석 혹은 생활양식분석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즉 계급논의를 단순히 문화 혹은 생활양식 논의로 대체한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라, 아비튀스 개념을 창안하여 계급개념을 의식과 구조를 아우르는 차원으로 확대하고, 계급행위를 문화적 실천으로 고양시켜 계급의 재생산구조를 새롭게 분석해냈다. 또한 부르디외의 이론과 방법론은 현실적 실천의 문제와 결코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의 반성적 사회이론은 궁극적으로 현실 사회의 지배권력의 정체와 재생산 기제를 폭로하고 있다. 사회학자로서의 부단한 반성적 인식비판과 객관적 분석작업을 통한 사회이론은 본질적으로 급진적,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지배권력의 재생산 기제를 폭로하는 비판사회이론은 이성에 대한 의지와 사회진보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부르디외의 현실 참여는 적극적이었는데, 말년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세계의 양극화와 비참함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부르디외의 반성적 사회학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 이론적 실천에 대해서도 역시 반성하게 한다. 즉 좌절됐기에 앞만 보고 돌진해온 한국사회의 근대, 즉 식민지적 그리고 수입적 근대에 대한 반성을 필요로 하며, 또한 뿌리없는 탈근대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로(고려대 강사 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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