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이 구절은 기형도 시인의 <대학시절>에 나오는 글귀다.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겉돌고 있던 1980년대를 가장 잘 묘사한 말이다. 이런 1980년대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고자 1991년에 생겨난 것이 ‘작은 대학’이다. 

‘작은 대학’은 신촌의 3개 대학(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던 5명의 교수들이 ‘작은 대학 운동선언서’를 발표하고 1991년 1기 입학식을 치르며 문을 열었다. ‘작은 대학 운동’은 기존 대학이 양적 팽창과 직업인 양성에 치중해 대학 본연의 연구, 봉사, 교수(敎授) 목적을 잃어버린 상황을 극복하려는 목표로 시작됐다. ‘작은 대학’에서 공부했던 1기 수료생이자 현재 ‘작은 대학’의 강사인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이황직 연구원은 “그 당시, 대학 강단의 강의는 매우 부실했고 사회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다”며 “‘작은 대학’은 본래 대학의 의미를 찾아서 그것을 실현하는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대학’에서는 1년에 17권 가량의 고전으로 20회 이상 세미나를 하는 것이 1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통이다. 특히 선정된 책들은 헤겔의 ‘법철학’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의 고전들이 대부분이고 현대철학을 제외한 대부분 책들은 1기 때부터 그대로이다. ‘작은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김혜미 씨는 “입학은 원칙적으로 1년에 2번 했지만 요즈음은 행정상 어려움으로 연 1회 입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강생은 30명에서 40명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데 1년 등록금은 24만원이며 3, 4월 입학식 후에 세미나를 중심으로 운영 된다”고 말했다.

현재 ‘작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정혜정(국제학부 02)씨는 “다른 대학에서 청강을 하다가 고전을 통한 공부가 중요함을 깨닫고 스스로 ‘작은 대학’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격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 참석하려면 미리 고전 리스트에 실린 책들을 읽고 가야하는데 세미나는 교수님들이 일방적 강의를 하시는 게 아니라 함께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특히 “실제로 고전을 읽는 것은 문맥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번역이 안 된 것이 많은 데, 세미나에서는 단지 텍스트를 읽는데 그치지 않고 깊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 대학의 세미나에는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한 책에 대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해석이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박영신(연세대 정외과) 명예교수가 기초한 ‘작은 대학 운동 선언서’에 나타난 ‘대학 찾기, 대학 높이기, 대학 낮추기’ 이념은 대학을 모두에 봉사하는 학술 공동체로 거듭나기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1991년에 시작된 ‘작은 대학 운동’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작은 대학’이 하는 역할을 기존 대학들이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 도서관 사회과학실에 가보면 대부분 서가는 경영학이나 법학 관련 서적들로 채워져 있다. 대학이 공리적 효용에 따른 도구화에서 더 이상 벗어나지 못 한다면 ‘작은 대학’이 외친 울림은 우리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대학’의 고귀한 정신을 대학인 모두가 이어받는다면 진정한 학술 공동체의 완성은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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