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을 통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역사가 중 한사람인 에릭 홉스봄. 그의 초기 노력은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주창하면서 지금까지 소외돼 온 노동자와 소수집단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집중됐다. 그 후 서양 근현대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꿰뚫은 4부작을 발표하여 전체사로서의 역사학의 가능성을 열었고, 후기에는 민족과 민족주의의 환상을 깨뜨리는 작업에 열중해왔다.

홉스봄 하면 우선 기억되는 것은 ‘긴 19세기’와 ‘짧은 20세기’를 아우른 4부작이다. 그는1789~1992년간의 역사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시대>, <극단의 시대 designtimesp=13262>로 구분하여 각 시대의 특징을 개괄하였다.

그는 1914년에야 끝난 ‘긴 19세기’가 부르주아를 위해, 부르주아에 의해 만들어진 시대라고 파악하는데, 혁명의 시대는 그 형성과정을, 자본의 시대는 팽창과정을, 그리고 제국의 시대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르주아사회의 토대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찾는 홉스봄은 이 토대를 마련한 두 사건, 즉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이중혁명’이라는 명제로 분석한다. 대략 1848년부터 시작된 자본의 시대는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압도하는 시기였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정치혁명은 대체로 좌절한 반면 산업자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침투했다. 이제 부르주아는 더 이상 혁명적 세력이기를 멈추고 기존 엘리트와 합세해 자국의 노동계급뿐 아니라 비유럽인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시대를 연 1880년대에 이르면 부르주아사회는 절정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세계는 전지구적으로 팽창했고 경제는 통합됐다. 물론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기술과 문화의 차이가 존재했고 그 차이는 양자간의 비대칭적이며 불평등한 관계를 더욱 심화시켰지만, 어쨌든 세계경제는 놀랄만한 역동성을 보여줬다. 홉스봄이 집어내는 부르주아사회의 역설은 그 발전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대중민주주의의 전진, 심화되는 계급갈등과 노동운동, 사회주의의 도전만이 아니라 19세기 후반부터 격렬해지기 시작한 여성의 반란도 한 몫 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1914년의 파국으로 귀결됐다.

1914~92년의 ‘짧은 20세기’를 다룬 <극단의 시대 designtimesp=13266>는 1917년생인 홉스봄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조명하고 있기에 더욱 생동감이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약간의 바이어스가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홉스봄은 소련 몰락 후에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도도한 흐름에 부정적이며, 특히 스탈린체제의 폐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물론 평생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아온 노 역사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로서는 주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비슷한 애착과 회한이 최근 발간된 자서전 <흥미로운 시간들 (Interesting Times) designtimesp=13268>에도 드러난다. 어쨌든 역사상 가장 큰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가 다른 한편 대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냉전시대에 역설적으로 전쟁의 위험이 작았음을 지적한 그의 통찰력은 날카롭다.

홉스봄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민족주의의 환상을 깨는 작업은 그가 편집한 <만들어진 전통 designtimesp=13270>에서 잘 드러난다. 필자의 번역으로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이 책에서 홉스봄은 우리가 통상 오래된 것으로 믿고 있는 전통들이 그 기원을 따져보면 극히 최근의 것이며 종종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전통의 창조’는 국가와 정치가들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통은 역사적 사실로 자리잡게 되며 국가의 권위와 특권을 부추기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민족이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 근대적 산물임을 지적한 <1789년 이후의 민족과민족주의>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주장하면서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담고 있다.
홉스봄은 역사를 단편적 주제들의 모음이 아니라 일관된 전체로서 보여주려는 의도를 탁월하게 실천한 역사가이다. 그의 손에서 역사는 부분의 합이 아닌 유기적 전체로서 다시 살아난다.

물론 홉스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학계는 19세기를 통해 지주층의 지배가 지속됐고 부르주아지는 상대적으로 허약하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세기였다는 홉스봄의 명제를 반박한다. 그의 역사 해석이 너무 서구중심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홉스봄이 제국적 팽창에서 경제적 동인을 중시하는 데 반해, 최근 연구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문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물론 홉스봄 자신도 제국주의가 주변부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서구식으로 교육받은 엘리트의 성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E. P. 톰슨 등 또래 역사가들이 거의 타계한 지금, 홉스봄은 한때 번성했던 좌파 역사학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다. 그의 정치적 소망은 좌절되었지만 그의 학문적 업적은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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