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 해 화제가 됐던 사건들을 선정하는 10대 뉴스를 보면 대부분 한·중 고구려사 논란이 빠지지 않고 있다.


지난 해 4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고구려사가 삭제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논쟁은 한국 정부의 항의 이후 4개월이 지난 8월,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수립 이전의 모든 역사가 사라지면서 정점에 달했다. 여기에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지방의 역사와 민족문제를 연구하는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이 중국사에 고구려를 편입시키려는 계획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이에 대해, ‘고구려사가 왜 한국사인갗 라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비판과 연대를 위한 역사포럼(이하 역사포럼)’이란 단체의 학자들이다. 그 중 임지현(한양대 사학과)교수는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이라는 책을 통해 고구려사 논쟁은 ‘국갇국민주권(national sovereignty)’이란 개념이 개입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임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역사학계는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역사의 범위를 한정짓는 관점인‘국갇국민주권’의 개념을, 한국의 역사학계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조상인 ‘예맥족’이라는 점에서 ‘역사 주권(historical sovereignty)'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두 가지 관점 모두가 자민족 중심주의의 입장으로, 복합성과 다양성을 배제하고 하나의 역사로 획일화한다는 점에서 폭력성을 내재한다고 본다. 현재 국가의 시점에서 그 이념에 맞게 과거의 역사를 재단하는 ‘국사(national history)’의 패러다임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사를 누구의 역사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변경사‘로 봐야한다는 것이 임 교수의 지론이다.


이러한 논의는 국민국가와 결탁한 국사의 고리 자체를 끊어야한다는 ‘국사해체론’으로 이어진다. 역사포럼 단체의 일원인 윤해동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사가 국민국가의 통합을 완성하는 매개체로 이용됐으며 역사 기술의 중심에 민족주의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국사에 있어 인식의 대상은 민족이며 이는 가부장제적 논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부장 중심의 역사로 치환된 국사. 여기에서는 가부장제의 억압성과 같은 부정적 측면이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소수자와 민중의 역사는 열외로 치부되고 만다. 윤 연구원은 그 예로 왕조 단위로만 나누어 서술한 현재의 국사 교과서를 들고 있다.

또한 식민지 치하의 한국사 기술 역시 민족주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경우 일반 민중들의 삶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제국주의 통치는 식민지 현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할 때 일제에 대한 우리의‘협력’이 없었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연구원은 협력과 저항의 경계는 무엇인지, ‘친일’을 어느 범위로 규정해야 할 것인지 반문하며 역사적 상황 하에 살아온 사람들의 고뇌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역사 기술이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역사 서술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인가. 역사포럼이 내놓은 대안은 ‘탈민족주의’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기원 자체가 근대화란 역사 속에서 발생한 산물로 인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 이상 국가국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역사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획일화하는 역사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적인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임지현 교수는 저서에서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기존의 역사를 해체하려는 탈민족주의적 역사관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다가올 수 있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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