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일본학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전시상황과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로 이뤄졌다.

미국의 일본학은 1946년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국화와 칼-일본문화의 형 (形)>으로 주목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일본은 1960~197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이는 서구사회에서 세계의 민주주의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됐다. 이런 인식은 1960년대 일본사학자 E. O. 라이샤워가 “일본에서도 유럽형과 같은 근대화 과정이 있었고 개발국은 이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긍정적으로 전환하게 됐다. 1970년 에즈라?F?보겔(Ezra F Vogel)은 <재팬 에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에서 일본의 발전은 단지 그 나라의 국민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특유의 조직력, 관료주도적 중앙집권적 시스템 등이 개입한 것이라며 일본의 발전을 예찬했다. 또 1980년 후반과 1990년에 일본이 막강한 경제력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폴 케네디(Paul Kenney), 빌 에모트(Bill Emmott) 등 일본의 흥망성쇠를 예측하려는 활동들이 일어났다. 미국은 21세기 일본 경제가 거품경제의 붕괴, 아시아의 외환위기와 맞물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새로운 일본 연구서의 출현을 기다리게 됐다.

유럽은 개인의 이국(異國)에 대한 관심이 일본학의 기본적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1549년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국시대의 일본사회와 접촉하면서 일본에 대한 연구는 시작됐다. 16, 17세기 당대 일본의 상황과 제후의 동정을 기록한 프로이스(Luis Frois)의 <일본사>와 엔겔베르트 켐펠의 <일본지(日本誌)>는 유럽의 일본학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줬다. 1810년 일본 막부로부터 폭넓은 활동을 보장받은 시볼트는 나가사키 등지에서 진료활동, 임상활동을 펼치면서 일본인들을 교육하는 사설학교를 세워 이들로부터 일본에 대한 다방면의 자료들을 얻는다. 후에 그는 <일본>, <일본동물지>, <일본 식물지>에서 일본의 자연환경 및 지리, 민족, 국가, 역사, 예술, 종교 등 일본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을 실었다.

유럽의 일본학은 19세기 말 들어 개인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에서 벗어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의 유지를 위한 대외정책적 연구로 변화한다. 이런 연구는 일본의 총체적 연구라기보다 정치?경제적 정책 변화를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일본과 전시상태를 가지게 된 유럽국가들은 대일정책을 수행할 일본어 전문가를 집중적으로 양성했다. 이는 후에 일본전문연구가를 다수 배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이 세계적 영향력을 높여가자 유럽 각국에서는 일본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려는 행태가 이뤄졌다. 국가차원에서 체계적 학문으로서의 일본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1972년 일본은 국제교류기금을 조성하고 이에 유럽국가들은 유럽일본연구협회를 설립했다. 이는 일본 경제성장의 과정과 요인을 해명하려는 유럽의 입장과, 구미제국과 경제적, 문화적 마찰을 완화해 보려는 일본의 입장이 서로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유럽일본연구협회는 일본의 문화, 역사, 종교, 경제 분야 등을 주제로 일본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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