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양극화의 심화로 빈곤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주로 물질적 의미에서의 빈곤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상적인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물질을 보유할 때 그것을 빈곤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전체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 때에는 이런 대체적인 이미지로는 부족하며 빈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을 정하는 방식은 대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절대적 방식으로서 이것은 가난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재화의 절대량으로 정하고, 그 절대량을 소비하는 데 필요한 화폐의 절대량을 정하여 이를 빈곤여부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절대적 방식에 의해 규정된 빈곤을 절대적 빈곤이라 한다. 둘째는 상대적 방식인데 이것은 전자와 달리 어떤 절대기준을 정하고 이것과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비교하여 빈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여부 판단의 기준 자체를 사회 전체의 생활수준을 고려하여 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회의 평균적인 소득수준의 50% 이하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빈곤하다고 규정하는 경우에서 평균적인 소득수준의 50%는 상대적 기준이다. 절대적 기준은 기준 자체를 새로운 계측에 의해 전면 개편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데 비해 상대적 기준은 비율만 정하면 그 비율에 의해 표시되는 기준금액은 평균적인 소득수준의 상승 또는 하락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상대적 방식에 의해 규정된 빈곤을 상대적 빈곤이라 한다. 셋째는 주관적 방식인데, 이것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재화의 보유 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이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가를 질문하여 그 응답을 기초로 빈곤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상대적 방식과 주관적 방식에 의한 빈곤율 측정이 이루어진 바 있으나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적 방식이며 이를 위해 최저생계비를 계측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과거 5년마다 계측했으나 2004년 3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올해부터는 3년마다 계측토록 되었다. 최저생계비 계측은 과거부터 해왔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규정에 의한 최저생계비 계측은 지난 1999년에 처음 이루어졌고 작년에 두 번째 계측이 이루어졌으며, 다음 번 계측은 2007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작년 계측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에 적용되는 최저생계비는 4인 가구 기준 월 113만 6천원으로 정해졌다(2004년 최저생계비는 4인 가구 기준 월 105만 5천원). 전체 인구(또는 가구) 중 가난한 인구(또는 가구)의 비율을 빈곤율이라 하는데 이 빈곤율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5% 가량이었으나 경제위기 이후에는 10%를 넘는 수준으로 높아져 빈곤율이 절대수치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만큼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빈곤이 심각해진 것이다. 또한 남성가구주 가구의 경우 빈곤가구는 남성가구주 가구 전체의 17.3%인데 비해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무려 43.3%로 이른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취업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른바 근로빈민, working poor)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공공부조 대상자의 대부분인 1인 가구의 상당수는 노인단독가구인데 이런 현상은 향후 노인인구비율의 증가와 함께 더욱 심해질 것이다. 빈곤의 여성화, 근로빈민의 급증, 노인빈곤의 심각화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흐름에 의해 상당히 널리 나타나고 있다. 빈곤인구 가운데 여성이나 노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것은 빈곤이라는 현상이 물질적 빈곤만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기회에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불평등 현상의 한 표현임을 의미하며, 이런 점에서 빈곤을 사회적 배제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우리 정부의 빈곤정책은 자체적인 불합리함으로 인해 사회적 배제를 가중시키는 구실을 하지 않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이의 개혁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남찬섭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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