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10월 3일 개천절을 맞이하여 분단 57년만에 평양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가졌다. 이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의 일환으로 남측의 단군학회와 북측의 조선력사학회가 공동으로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공동 학술토론회’를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학술토론회에서 남측과 북측 각각 4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하였는데 필자는 ‘남북한 단군 인식의 편차 극복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10월 1일 인천공항에서 고려민항기를 타고 직항으로 평양을 향하여 1시간 정도만에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9월 중순 실무대표로서 평양에 갈 때 심양을 거쳐 평양에 가느라고 이틀이나 걸린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국제선이 아니라 국내선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다음날 단군 관련 유적지 답사를 묘향산으로 갔는데 먼저 국제친선전람관에 들러 세계 각국의 VIP들이 북한의 지도자에게 보낸 진귀한 기념품들을 관람했다. 남한에서 온 것으로는 김대중 대통령과 故정주영 회장 그리고 김정배 前 본교 총장이 선사한 기념품 등이 전시돼 있었다. 점심을 먹고 북한 불교의 본산 보현사를 관람하였는데 유적 정비를 잘 해 놓았다. 특히 ‘력사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 관리하자’는 표어를 대웅전 옆에 돌에다 새겨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평양으로 돌아와 만경대에 들렀다가 대동강을 따라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하였던 쑥섬에 들러 통일전선탑을 관람했다.

10월 3일에는 평양에서 40Km 떨어진 강동군의 단군릉에 가서 먼저 발굴된 단군부부의 인골을 관람했는데 석실에 단군과 부인의 유골을 안치하고 가운데에 단군의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북한은 1993년 단군릉을 발굴한 후 1994년 단군릉을 복원하여 놓았는데 장군총을 본따서 9층의 적석총으로 길이 50미터, 높이 22미터나 된다. 개천절 기념식을 마치고 기념식수를 하고 예술공연을 보았는데 무용 솜씨가 가장 눈에 띄며, 개조된 가야금 연주가 돋보인다.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중앙력사박물관을 관람했는데 전시실이 모두 19개로 나뉘어져 있다.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 고조선시대 등 시기별로 방을 배치했는데 고조선실에 단군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고구려실은 무려 5개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구려시대의 많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반면에 신라와 백제 및 가야는 한방밖에 없으며, 그나마 모조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곳 관계자에게 남쪽 신라의 유물과 북쪽 고구려 유물을 교환 전시하자는 제안을 하였더니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맨 마지막 방에는 3·1 운동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어 이후의 유물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혁명력사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학술대회에는 북한의 역사학자 대부분과 역사 교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학술토론회는 시간이 많지 않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서로의 의견을 본격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은 갖지 못했으나 서로 만나 처음으로 서로의 의견을 발표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따라서 공동보도문을 통해 이러한 만남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공동으로 합의했다.

다음날에는 환인과 환웅 및 단군을 모신 삼성사가 있는 구월산으로 향했다. 버스로 세시간이나 걸렸으나 고속도로에 다른 차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 이유를 물으니 기름이 부족해 화물들은 기차나 배로 운반한다고 한다. 구월산에 도착하여 삼성사를 관람했는데 환인과 환웅 및 단군의 초상화가 매우 힘있게 묘사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사람,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보여 물어보니 오늘이 장날이라고 한다. 장날은 열흘에 한번 서는데 토산품들을 사고 판다고 한다. 쌀은 배급을 하고 잡곡은 상점에서 판매를 하며 그 외의 것들을 장에서 판다고 하며, 평양시내에는 매대(가판대)에서 청량음료와 같은 것들을 팔고 있다. 평양시내에는 자동차들이 제법 다니지만 시민들은 대개 지하철이나 버스 및 전차를 이용하고 있다. 평양의 지하철은 북한이 매우 자랑하는 것으로 깊이가 15미터나 되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데 전동차의 승차감이 좋았다. 평양시내는 지난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날 고려민항기를 타고 직항으로 인천공항에 돌아왔는데 지금도 그때 만난 북한의 학자들과 복무원들, 그리고 평양시민과 지방의 주민들이 눈에 선하다.

앞으로 경의선이 연결되고 동해안의 육로가 개통되면 남과 북의 교류가 보다 활발해질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해 통일의 그 날이 빨리 다가오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진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