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까뮈는 ‘본질이란 무엇인갗의 질문에서 사회현상의 ‘부조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그들의 학술적 활동은 달랐다. 

까뮈가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나타낸 부조리는 산꼭대기를 향해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삶이다. 이는  아무런 의미 없이 일상생활을 반복하는 인간의 삶은 같은 성질의 것을 공유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정신세계에서 나타나는 생의 무(無)적인 것은 이와 유사하다. 사르트르의 ‘부조리’는 외적인 것은 물론 인간 자체도 그 존재가 ‘없는 것’이 다. 반면 까뮈는 부조리를 인간과 세계라는 양극의 시공간에서 중간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즉 부조리는 그 스스로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 사이에 설명될 수 없는 혼돈적인 것이다.

까뮈는 <반항인>에서 인간이 자신의 주된 인간성을 기초로 존재의 객관적 무의미성에 ‘반항’하는 행위를 할 때 본래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반항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까뮈의 사상은 사르트르의 그것과 구별된다. 까뮈에게 있어 반항이란 비상식적인 구속에 대해선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바쳐 꼭 지켜야 할 것, 즉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에 대해선 “예”라는 단호한 긍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가 가지는 본래적․본질적 요소가 현실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실존적 요소에 우선한다는 것으로 파악돼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사르트르의 견해와 상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르트르는 반항을 사회 전반을 뒤집는 혁명과도 같은 것으로 보며 까뮈가 취하려고 하는 중도적 입장을 비판했다. 그는 까뮈의 <반항인>을 프랑스 혁명 정신을 퇴보시켰다고 평가받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에 비유하며, 그의 사상을 ‘철학적 무능’이라 비난했다. 프랑시스 장송(Francis Jeanson)이 까뮈의 사상을 ‘애매모호한 휴머니즘, 무정부주의에 필요한 것들의 명세서’라고 평가한 것과 같이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사르트르에게 있어 그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전 인류의 이름 아래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며 구성원들에게 현실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강충권(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까뮈의 반항은 인간의 근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조리를 ‘개선․개혁하는 반항’, 사르트르는 인간의 근원을 무(無)로 보고 철저하게 ‘파괴하려는 반항’을 역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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