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일본 열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한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故 이수현. 본교 무역학과를 휴학하고 도쿄에서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원을 다니던 학생이었다. 이 씨는 2001년 1월 26일 밤, 도쿄 신주쿠(新宿)구 JR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만취한 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씨가 미끄러져 철로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 씨는 다른 일본인인 세키네 시로(關根史郞)씨와 함께 그를 구하기 위해 철로로 내려갔다가 전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수현 씨의 살신성인을 크게 보도하며 안타까워했다. 이 씨의 장례식에는 당시 일본 총리였던 모리 총리를 비롯한 1000여명의 추모객이 줄을 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의 넋을 기리는 추도 물결은 일본 열도에 퍼졌고, 국내에서도 이 씨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본교는 같은 해 2월에 이 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고, 총학생회의 주최로 이 씨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4월에 열렸다. 이 씨의 아버지인 이성대 씨는 이 씨를 추모하기 위한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2001년 10월에 본교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에도 이 씨의 4주기 추모행사가 한일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고향인 부산에서 열렸다. 또, 이 씨를 추모하는 영화가 한 · 일 합작으로 제작돼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다음해 7월 22일, 꽃다운 청춘이 의롭게 삶을 마감한 사건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당시 본교 행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장세환 씨의 죽음이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장 씨는 본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다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했다. 장 씨는 소매치기범을 잡기위해 그를 뒤쫓던 중 교우회관 앞 편도 4차선 도로에서 마주오던 승합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 장 씨의 의로운 죽음이 보도되자 그의 죽음을 기리는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또, 당시 대통령 후보들을 비롯한 약 2000명이 고대 안암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본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장 씨를 추모하는 학생들의 글이 끊이지 않았다. 본교는 같은 해 8월에 장 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9월에 추모비를 제작했다. 장 씨의 유가족들은 명예졸업장 수여 후, ‘장세환 추모 장학회’ 설립식을 갖고 본교에 5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서울시는 장 씨를 비롯해, 1993년 친구를 구하려다 익사한 12살 김태훈 군과 1998년 버스 탈취범을 제지하다 차량에 치여 숨진 본교의 학생 신형수 씨를 추모하는 기념표석을 설치했다.

이처럼 본교 학생의 의로운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이들의 죽음은 아름다운 희생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줬다. 의로운 죽음을 맞은 선배들의 영혼을 기리며, 100주년을 맞은 민족고대인들이 앞으로 어떤 고대생으로 거듭날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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