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특집]인터뷰-오탁번교수, 시인이 말하는 시인 조지훈
[조지훈특집]인터뷰-오탁번교수, 시인이 말하는 시인 조지훈
  • 양은희 기자
  • 승인 2002.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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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정서 時化, 현대시사의 전망제시


 
약관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해 승무, 봉황수 등 주옥같은 작품을 써낸 조지훈 시인.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를 이끌었으며, 20세기 한국 서정시의 전기와 후기를 이은 시인 조지훈의 이야기를 시인 오탁번을 통해 들어본다.
 
▲조지훈 시인 시의 특징은.

- 지훈시의 특징은 동양적 사유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는 운율과 비유를 통하여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시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사의 미래를 향한 하나의 전망을 담고 있다.

▲시인으로서 배울 점과 부족한 점은.

- 안타까운 것은 지훈이 시창작에 더 집중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너무 방대한 궤적을 그리며 스스로 좁은 시인의 세계를 벗어나서 큰 지도자의 광활한 길로 나섰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지훈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렛대가 되면서 동시에 지훈의 문학적 생애를 규정짓는 단서가 된다는 점이다.

▲조지훈 시인은 약 1백50편의 시편들을 활자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베껴두었고,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친필시를 모아 『지훈육필시집』을 펴냈다. 조지훈 시인의 시 창작과 관련된 버릇은.

- 지훈이 육필 시집 원고를 별도로 남겼다는 것은 그만큼 시작품을 쓰면서 혼신의 힘을 다 했다는 증거이다. 또 겸허히 고백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조지훈 시인 시 중 특별히 좋아하시는 시와 이유를 듣고싶다.

- 「봉황수」이다. 유장한 운율과 상징이 지훈이 아니면 갈무리할 수 없을 정도로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지훈은 등단할 때 이미 대가의 풍모를 십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시인은 초창기에는 시를 많이 썼지만 후기에는 시 창작보다는 오히려 국학에 관심을 갖고 민족문화연구소를 창립하는 등 민족문화 연구에 더 총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시문학을 위해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면서 한국학을 위해서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훈은 예술과 학문이라는 양면적인 인격을 생태적으로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조지훈 시인은 문학 외에도‘知多’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동서양 사상, 철학, 종교, 정치 등에 많은 관심과 박학다식한 지식을 가졌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知多' 또는 '趙知多'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박학다식한 지훈의 학자적 풍모와 부정과 불의를 제압하는 반항적인 기개는 매우 인간적인 것이면서도 나약한 선비의 한계를 일거에 뛰어넘는 상징적인 차원의 것이다.

▲‘시인 조지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 고대신문을 비롯한 고대생의 문화에서 지훈의 손길이 안 묻은 곳이 없다. 지훈은 살아서도 고대의 상징이었고 죽어서도 상징이 된 희귀한 경우이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49세에 세상을 버리셨지만 4백90년이 넘어도 그는 고대의 교가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는 상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요즘사람들은 빨리 죽은 길을 향해 온갖 욕 다 먹으며 사욕을 부리는 것일까.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 이제는 아득히 흘러가 버린 1968년 봄 춘설이 내린 어느 날을 다시 이승으로 불러내어, 선생님을 모시고 술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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