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유주의 정의론은 롤스(J. Rawls)의 담론에서 출발한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정의론』은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해 종적을 감추었던 실천철학의 고전적 주제인 ‘정의’의 문제를 새로운 지평에서 복권시켰다.

롤스는 개인들간의 합의를 통해 정의의 원칙을 산출하기 위한 공정한 절차로서 ‘원초적 입장’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공적인 사안들에 접근하기 위해서 자유롭고 평등한 당사자들이 개인적인 특수성과 무관하게 합의할 수 있는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장막’이다. 무지의 장막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합의당사자들은 자신의 정신적·체력적 조건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나 선에 대한 관념들,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가정된다.

이렇게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제반 조건들이 제한된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정의의 두 가지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즉, 사람들은 원초적 상황 하에서 우선 모든 이들이 평등한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는 점에 합의한다. 다음으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자들에게 최대한 이익을 증진시킬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차등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이렇게 합의된 정의의 두 원칙은 평등과 자유의 적정한 조화점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평등주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롤스의 정의론은 그 정당화방식이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공동체주의의 집요한 비판을 받아 왔다. 이 비판들은 무엇보다도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정이 허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 모아진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장막이론에서 상정되고 있는 합리적 선택의 주체가 단지 ‘연고없는 자아’ 또는 ‘원자론적 개인’일 뿐이며, 자아의 정체성은 공동체적 선이나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게 형성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유승익 대학원·헌법

나아가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는 당위론적 도덕이론은 자아에 대한 공허한 관념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모든 당위적 도덕관념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공동체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윤리나 고전적 공화주의의 부활을 통해 자율적 개인에게 추상적으로 인정되는 권리 중심의 이론체계를 극복하고 공동체와 공동선에 규범적 우선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따라서 공동체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독자적인 정의론을 구성한다기보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공동체의 해체현상에 대응하여 자유주의적 정의론이 간과하고 있는 공동체의 의미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롤스는 『정의론』에 쏟아진 이와 같은 비판들에 답하면서 이른바 ‘정치적 선회’를 통해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수정하게 된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그는 자신의 정의론이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포괄적 교설들에 중립적인 중첩적 합의를 통해서 정치적 영역을 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것임을 역설하였다.

법은 정의를 추구한다. 따라서 정의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에서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따라 법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사이비자유주의 또는 극단화된 형태의 공동체주의는 법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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