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분과는 ‘전환기의 한국사회’라는 큰 틀의 주제로 진행된 가운데 새로운 시각을 통해 과거 청산, 분단과 통일, 민족주의 등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안들에 대해 논의됐다. 발표자로 나섰던 석학이 다른 주제의 발표에서 청중으로 참여해 의문을 제기하고 서로 토론하는 모습은
학술대회의 또 다른 즐거움과 재(再)고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 훔볼트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 justice after demoncratization)’를 주제로
강연했다.
오페 교수는 “비민주적인 체계에서 민주적 체계로 넘어가면서 이전
체계의 영역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과거사 청산을 하게 된다”고 전제한 뒤 사례를 바탕으로 과거사 청산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피해자 보상에
있어 사과와 같은 상징적 보상이 물질적 보상에 비해 효과가 클 수 있으며, 피해자들의 결속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에 해당한다.
또한 가해자 처벌을 피할 경우 부정적 여파가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체제도 이전과 같은 체제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률적 절차에 결함이 있어 적절한 적법 조항을 찾기
힘들다"며 가해자 처벌의 어려움을 말했다. 이어 국내 주체 보다는 국제형법재판소와 같은 국제적 주체가 가해자 처벌에 나설 경우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사 청산의 목적에 대해 오페 교수는 △정의 구현 △화해(화합) △진실규명 △재발 방지 등 네 가지를 들어
설명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특히 화해를 이야기하며 ‘서로 상반된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먼저 합의해야 한다’는 ‘메타합의’란
개념을 사용하여 눈길을 끌었다.
오페 교수의 발표에 대해 한상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사 청산에 있어 국제적 영향보다는
시민사회와 국가 사회의 관계가 더욱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결속력을 갖는 장기적 화해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표자는 로저 자넬리(Roger L. Janelli)교수로 ‘전통가치와 시장경제(Traditional
values and the market economy)’에 대해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그는 한국 전통의 주관적 특성을 현재의
한국 경제와 연관시켜서 설명했다. 우선, 주관적 특성에 대해 갈릴레오의 지동설, 맑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입장 등을 예를 들면서 객관적이었다고
생각했었던 틀이 결국 주관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에릭 홉스봄의 생각을 빌려 “전통도 결국 과거에 대한 짐작이나 선택적
사용”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도 이와 관련 있다고 본 자넬리 교수는 전통 문화를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에 일어났었던 사건들과 연관시켜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먼저 그는 한국 유학(儒學)의 예를 들었다. 자넬리 교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1960년대 한국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유학이 물질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으로 봤다는 것이다. 이어 “1980년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할 때는
오히려 유학이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의 한 요인이 됐던 정실주의를 다시 유학의
탓으로 돌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유학은 깊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시대마다 한 가지 특성만 부각시켜 유학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전통에 대한 다양한 의견으로 △전통을 부정하는 경우 △전통을 인정하나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견해 △전통은
소수자들이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므로 긍정적으로 봐야한다는 주장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전통 가치들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인정하지만 그것은 그 전통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들과 가치들에 부합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 번째 발표자는 존
본만(John Borneman) 프린스턴대 교수로 ‘한국 통일에 예상되는 견해: 독일 통일과 어떤 관계인가(Anticipatory
reflection on Korean unification: how is German unification relevant’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한국과 독일이라는 두 국가의 특징이나 통일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모두 ‘국가의 통일’이라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본만 교수는 통일의 주요문제인 차이의 문제를 다루고 독일 통일을 한국 통일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독일이 통일국가가 생긴지 150년에 지나지 않지만 범게르만주의 의식은 예전부터 독일인들에 내재돼 있었던 것으로
본다. 따라서 문화적인 범게르만주의 의식이 독일 통일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의식 때문에 실제로 통일이 서독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동독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통일 이전을 그리워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 두 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인맥적인 점을 통일 이전에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또한 본만 교수는 “한국은 통일된 국가로서 5000년 이상의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 내에서도 자신들의 ‘종’에 관해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한국은 독일에 비해 쉽게 통일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지만 남북의 차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인 그는 독일의
경우를 비춰 설명했다. 독일의 갑작스러운 통일로 경제적 통일이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이러한 경제적 차이점은 곧 서독의 동독에 대한 구조 관계로
고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며 “동독은 점차 서독을 따라가고 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독일의 통일은 평화로운 가운데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본만 교수는 한국의 통일 과정에 대해 통일 시기,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북한 정치체제 전환의 혼란, 재산 문제 및 사법제도를 유념하라는 주문을 하며 발표를 마쳤다.
마지막 발표자는 존 리(John
lie) 버클리대 교수로 ‘한국의 이산적 민족주의(Korean diasporic nationalism)'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사료를 보면 이산 국민과 비(非)국가적 요인의 중요성이 축소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국가적 현실에서 보면 이주는 그 궤도와
사회분야가 다양하지만 그동안 단순화되어 설명돼 왔다”고 덧붙였다.
이주(diaspora)의 기원을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에게서
찾은 그는 “따라서 국민국가가 이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주장했다.
또한 리 교수는‘한국은 순수혈통’이라는 주장은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며 “지난 세기에 들어서야 한국인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민지배 속에서 한국이란 국가의 틀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주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인의 이산 특성을 재발견할 것을 강조한 리 교수의 발표에 대해 신광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초(超)민족적 차원에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리 교수의 문제 제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 설정이 없다”며 “민족주의적 시각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서 특정 서적이나 사람의 언급이
없어 실체가 아닌 허상을 공격하는 느낌”이라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