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에서 논의한 몸 담론은 문제의식에 있어 그 맥락을 달리 한다. 여기서 동양은  주로 ‘동북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 한정하도록 한다.

이승환(문과대 철학과) 교수는 “동양에서의 ‘마음’은 생명력(氣)의 활동에 수반된 기능으로 간주됐다”고 지적하고 “몸과 마음이 상호연관적 관계로 이해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는 서양의 데카르트가 몸과 마음(정신)을 분리시킨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데카르트는 몸을 물질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마음을 생각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이들을 ‘실체’로 여겼다. 그리고 ‘마음=능동적’, ‘몸=수동적’인 관계로 설정하면서 마음이 몸에 비해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동양의 지적 전통이 몸과 마음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여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맹자와 정(情)의 예를 들면서 설명했다. 즉 맹자가 인간의 본성으로 제시했던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이미 ‘도덕적 감정’과 ‘이성적 판단’이 깃들어있다는 것이다. 정(情) 역시 ‘몸과 마음의 통합’, ‘감성과 이성의 통합’적인 성격을 띤다. 이 교수에 따르면 <황제내경(黃帝內經)> 중 “화나면 기가 올라가고, 기뻐하면 기가 완만하게 되고……” 라는 부분이 분노하게 되면 얼굴과 귀가 붉어지며, 기뻐하면 기와 혈(血)이 활발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감정에 따라 몸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다.

유초하(충북대 철학과) 교수도 동양과 서양의 몸에 대한 개념은 다르다고 언급한다. 주희나 이황이 말하는 ‘이(理)’나 ‘기(氣)’의 개념은 서양에서 말하는 몸과 마음의 개념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유 교수는 이기(理氣)와 가장 근접한 서양 철학적 개념으로 브루노의 형상과 질료를 들었다. 그는 이(理)와 기(氣)를 각각 사물의 성(性)과 형(形)에 비유하고, 이를 또 ‘본성 내지 본질’과 ‘꼴 내지 형체’로 대응시킨다.

이러한 동서양의 몸에 대한 인식구조의 차이로 인해 몸 담론의 형태도 다르게 나타났다.
 
동양의 주류적인 몸 담론은 일원(一元)론적인 사고에서 시작했기에 ‘자기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심신(心身)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하는갗의 문제를 논의했다. 따라서 유가, 불교, 도가에서 ‘수양’, ‘수련’, ‘수행’ 등의 방법론적 논의가 이뤄졌다. 
이에 반해 서양은 데카르트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마음이 몸에 비해 우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몸은 ‘의식이 결여된 물질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이에 비판하고 나선 학자들이 메를로 퐁티, 하이데거, 푸코 등이다. 노양진(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오늘날의 몸의 중심성에 대한 담론들은 메를리 퐁티와 듀이의 철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옹호됐다”고 설명했다. 이승환 교수는 “이성을 감성의 지배자로 삼으려는 근대적 사유구조에 대한 반발은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멘 드 비랑(Maine de Biran)에 의해 촉발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촉각-운동 주체로서의 몸’, ‘주관으로서의 몸’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편 니체는 “나는 전적으로 몸 일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며 과거 이성중심 이론을 해체시켰다.

이처럼 동서양에 걸쳐 몸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뤄졌다. 비록 이런 논의들이 차이점을 보인다하더라도 정신과 마음, 육체와 몸과 같이 ‘인간 존재’에 대한 본원적 탐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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